"그 첫 번째 발걸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2.9
✺ 갈라테이아 황제가 소환진을 그리고 있다.
식을 모두 그릴 때까지 신전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엄명이 있었다.
2.19
✺ 예일의 황성에 유례 없이 모든 드래곤과, 이세계의 소환자들이 초대되어 있다.
2.20
✺ 황성은 전에 없던 기묘한 분위기이다.
이렇게 많은 「외지인」이 방문한 적이 있었던가?
소환자와 드래곤, 어느 쪽이든 신기한 존재들이다.
「드래곤」
황궁이라고 불리는 이 새하얀 건물은 곳곳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우리와 인간의 전쟁이 있기 전, 어느 드래곤의 권능으로 지어진 건물이라고 들었다.
더욱 깊고 짙은 밤이 오고 있다.
느낄 수 있다.
지금껏 몇 번의 밤을 겪고,
이번 대엔 긴 낮을 이어왔지만…. 다가올 밤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둠일 것이다.
이세계의 인간들은 하나같이 묘한 「아티팩트」를 소지하고 있는 듯 하다.
움직이는 순간을 그대로 담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니.
저 작은 물건에는 어떤 마법이 깃들어 있는걸까?
“이 참에.. 판타지 세상 VLOG 도전해볼까..?! 컨텐츠 대박.”
라고 중얼거린 소환자가 긴 막대기에 달린 「아티팩트」를 들고 성큼성큼 다가온다.
중년으로 보이는 소환자가 황궁 관계자를 붙잡고 울다가 바닥에 주저앉는다.
“집에 보내 주세요… 딸이 초등학생이란 말이에요. 제발…”
어느 세계이든 키우던 새끼를 잃은 인간은 언제나 절박한 법이다.
오는 길에 눈에 띄어 처리한 4급 천사가 재로 바스라지면서 기묘한 언어를 중얼거렸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어쩐지 익숙하고 그리운… ….
4급 천사까지는 홀로 상대할 수 있지만, 3급부터는 부상을 감수해야 한다.
인간보다 회복력이 좋아서 다행이지만, 우리의 「권능」으로도 천사를 말살시킬 수는 없다.
인간들의 황궁인 이 곳과 거울처럼 생긴 성이 드라켄헤임의 중심에도 있다.
《라 시르》라고 불리는 그 성은 이렇게 깔끔히 관리가 되어있지는 않아 무성한 풀과 나무가 자라있지만...
종종 있는 로드의 「전체 회의 소집」때 그 곳에 모이고는 한다.
이세계의 인간들은 작은 마법만 보아도 호들갑을 떤다.
반대로 저 건너편의 세상에는 어떤 미지가 있을까?
이론으로만 들었던 다른 세계의 인간들을 불러들이다니,
이번 대 인간의 황제는 대단한 능력을 지닌 듯 하다.
인간은 항상 그 짧은 생애동안 격동하고 새로운 무언가를 보여주지.
어떤 이는 인간과의 동맹이 마음에 들지 않아보인다.
그러나 이미 모두의 전체 회의에서 동의하고, 로드가 공식적으로 선언한 일.
이제 와 물릴 수는 없다. 우리는 약속의 종족이니까.
고개를 들었을 때, 그다지 높지 않은 나무를 볼 때마다 이곳이 인간의 땅임을 실감하게 된다.
드라켄헤임이라면 분명 몇 배는 되었을 것을.
“인간의 찻잎은 나름의 맛이 있지.”
찻잔을 든 채 퍽 즐거워 뵈는 동족의 뒤로,
맛이 궁금한지 기웃대는 소환자가 보인다.
동족들이 각자의 정보를 나누고 있다.
라일은 그야말로 사지가 되었다지. 안타까운 일이다.
재로 돌아간 천사는 어느 순간 되살아 온다더군.
끝없이 회귀하는 천사를 온전히 박멸할 날은 언제 쯤일까.
“천사를 박멸한 뒤엔, 인간과 다시 교류를 틀 수도 있을까.”
누군가 궁금한 듯 속삭인다.
글쎄, 아직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옷차림만 다를 뿐, 소환자들은 이 세계의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또 다른 세상에도 용이 있다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자기 자신의 심장을 꺼내서 사용할 수 없다.
서로의 권능이 충돌하므로 다른 드래곤이 사용할 수도 없다.
썩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결국 작은 인간과 함께할 수밖에 없나.
“불편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시종 하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여 온다.
그 눈은, 우리에게 막연한 기대를 품은 듯이 보인다.
갈라테이아 황제가 펼친 것은 분명, 「용의 심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를 소환하는 마법.
이 넓은 키무스 멕시에에 있을 누군가를 불러내는 소환진이었건만..
설마하니 그게 「다른 세계의 존재」가 될 줄은 황제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겠지.
황궁에는 「천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꼭, 무저갱이 발생하기 전의 상황 같군.
시종이 소환자들에게 우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모처럼 용이 있으니, 다가가 물어봐도 좋을 것인데.
이 곳, 수도인 「예일」에서는
아직까지 무저갱이 발생하지 않았고 ‘천사’가 나타나지 않았다.
이번 대 인간의 황제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손윗 형제 셋을 모조리 숙청하고 황위에 올랐다지.
비범한 인재임엔 틀림이 없다.
“실례합니다~ 저랑 사진 하나만 같이 찍어 주실래요?”
소환자 하나가 얇고 작은 쇳덩이를 들고선 다가온다.
여행을 제외하고서, 이리도 많은 인간을 본 것은 처음이다.
꼭 뿔을 숨겨야 할 것만 같다.
몸을 배배 꼬며 다가온 소환자가 눈을 반짝인다.
"저… 혹시 저희를 등에 태워 주시나요? 그, 투x리스처럼.. "
투x리스란 용의 이름일까. 저 너머의 용은 탈것으로 전락했는가.
"저들이 내 심장을 쓸 자인가."
내 근처의 용이 소환자들에게 자애로운 눈빛을 보내고 있다.
그리 낭만적인 일은 아닐 것인데, 여행을 퍽 좋아하던 이니 새로운 인간이 사랑스러운가 보군.
"저 용, 누구였지?"
"당신이 삼백 년 전 낳았던 분이군요."
"여전히 머리가 좋군."
두 드래곤이 나누는 대화가 들린다.
어린 용은 금세 크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도 하다.
「소환자」
황궁이라고 불리는 이 새하얀 건물은 곳곳이 정교하고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다.
넓어서 길을 잃게 되면, 어디에나 있는 황궁의 관리인들이 길을 안내해 준다.
밖에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밖에는 「천사」라 불리는 괴물이 있으니까.
귀중한 ‘손님’인 우리들은 안전한 곳에 있어달라고 … …
처음 왔을 때부터 황당했는데, 역시 꿈이 아닌 걸까?
그렇다기엔 손에 닿는 촉감도, 냄새도, 지나치게 현실 같다.
복도에서 마주친 시녀가 불편할 만큼 깍듯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소환자님. 길을 잃으셨나요? 방으로 모실까요?”
마주칠 때마다 ‘소환자님’, ‘특별한 분’이라고 불러온다.
머리에 뿔이 달린 사람을 보았다.
사람일까? 듣기로는 「드래곤」이라고 하던데.
여기 장르 라노벨이야?
“이 세계에 「천사」가 나타난 지는 일 년쯤이 되었어요.
‘완전한 존재’이신 분들의 힘으로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대요.
소환자님들이 와 주셨으니 이제 괜찮아지겠죠.”
“폐하는 현재 유일한 5클래스 마법사인 ‘현자’이면서, 대신관님이세요.
소환자님들을 불러들인 것도 폐하가 직접 하셨다고 들었어요.”
“소환자님의 세계에는 마법이 없나요? 아티팩트는요?
그러면 물은 어떻게 데우고, 여름에는 방온복을 입을 수 없나요?”
여기저기 다양한 표정의 「소환자」들이 보인다.
아직도 적응을 하지 못 한 사람, 벌써 적응했는지 여기 저기에 무리를 만들고 다니는 사람.
우물에서 물을 긷던 시종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밤이 오고 있다는 말을 중얼거린다.
...무슨 뜻이지?
이건 혹시.. 「이세계 소환」이라는 것?!
갑자기 엄청난 능력을 각성하고 하렘이 되는 그런 패턴…?!
….이라기엔 소환된 사람 지나치게 많지 않냐?
폰으로 아무리 데이터를 연결해봐도 인터넷은 접속 불량이다.
“보던 웹툰은 마저 보게 해줘!!”
누군가 자신의 핸드폰을 붙잡고 중얼거린다.
신기한 일이다.
외국인과도, 판타지 세계 사람과도 말은 통하는데 문자로 쓰여진 것은 읽을 수 없다.
폰이 되기는 하는데 신호가 안 잡힌다.
배터리를 아껴두는 게 좋을까.. 일단 꺼둘까? 어떻게 하지….
그냥 대화를 하면 자연스럽게 내 모국어로 들리는데,
주의깊게 집중하면 그 사람의 원래 언어로 들리면서 뜻은 이해된다.
이것도 마법일까?
어떤 사람이 동영상 로딩이 멈춘 핸드폰을 붙잡고 이마를 친다.
“아니, 그래서 얘 진짜 아빠는 누군데!”
...저 사람도 「우아한 모녀의 스카이캐슬」 보는구나!!
“그러니까- 기사가- 되어야 한다고요-”
“뭐어라-고-?”
“할머니-! 기사요-! 기사!! 칼 들고 싸우는 거!!”
“가시-?? 자꾸 뭐라케쌌냐, 나 속 좋단께. 속 안좋냐고만 물어보고…야야, 집에 보내줘야~”
“기사가 되셔야 한다니까욧!!!”
언제나 생글생글 웃고 있던 황궁의 시종이 지쳐서 이마를 짚고 있다.
보아하니 여기엔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끌려온 것 같다.
언어가 통해서 다행이지만...
“여..여기가 예일? 예일대 축제 기간인가요?!”
누군가 경악한 목소리로 외친다.
대학교가 이렇게 생겼을 리 없잖아!
시종 하나가 천사의 비주얼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천사와 닮아 있기도, 다른 종교 속 모습을 하고 있기도 하다.
“저기요, 제 볼 좀 꼬집어 주실 분..?”
누군가 얼빠진 얼굴로 연신 돌아다닌다.
꼬집어 줘야 하나?
황제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지?
그 사람이 질문을 받아준다면,
우리는 무엇을 가장 먼저 물어야만 할까?
“전쟁이 무려 천 년이나 이어졌단 말이죠?
그 전쟁을 마무리하며, 드래곤의 맹약이 생기고... 정말 흥미롭군요!”
누군가 시종을 둘이나 붙잡은 채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학자라도 되는 걸까?
“천사면 천사고, 괴물이면 괴물이지, 어째서 천사가 괴물이라는 걸까요?”
십자가 목걸이를 손에 쥔 사람이 의아한 말투로 중얼거린다.
전 세계의 사람과 말이 통하다니, 꼭 미래에 온 듯한 기분이다.
“이럴 거면 외국어 공부는 왜 한 거야!”
학생으로 보이는 누군가 옆에서 비통하게 소리친다...
마법이 있는 세계라면, 나도 마법사가 되는 걸까?
내 손은 아직 묵묵 부답이지만...
누군가 시종을 붙잡고 울먹인다.
“발렌타인에 고백해서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단 말예요! 돌아가야 한다고요!”
안타깝지만.. TMI 이군.
“드래곤이랑 사진 찍어 가면 좋아요 몇 개 받을까?”
누군가 들뜬 목소리로 속닥인다.
하지만, 보통 분장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나?
"저들이 내 심장을 쓸 자인가."
저 너머의 용이 이 쪽을 쳐다보며 이상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심장이라니.. 설마 우리를 개조 인간으로 만들려는 건 아니겠지?
"저 용, 누구였지?"
"당신이 삼백 년 전 낳았던 분이군요."
"여전히 머리가 좋군."
…? 내가 뭘 들은 거지?
드래곤 사회에도, 막장 가계도가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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