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의 달콤한 과실."

✺ 여기가 안개의 도시, 아리아... ...

 

지평선 끝으로 안개에 감싸여진 도시가 보인다.
저 곳이 ‘아리아’? 지금껏 지나쳐온 다른 아르투스의 도시들과 달리,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귀가 먹먹해지는 적막이 느껴진다.


아리아에 진입했다. 회색빛에 가까운 두꺼운 안개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런 것 치고 그 정도의 습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
어쩐지 몸이 무겁다.


안개에 감싸인 도시 곳곳에 빈 ‘고치’가 보인다.
저건... 전에 보았던 1급 천사의 '그것'이 생각난다.


어디선가 낭랑한 현을 퉁기고, 이어서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합창하는 노랫소리가 따라온다.
이 노래는 솔루스를 위한 찬송가같은데… …
노래 부르는 천사… 도 있는건가? 설마.


아리아의 안개는 소리를 잡아먹는다더니,
바로 앞에서 말 하지 않는 이상 조금만 떨어져도 목소리가 묻히고 만다.
귀가 밝은 드래곤과, 기아스에 각성한 소환자가 아닌 보통 인간이라면
바로 앞에 있어도 대화가 어려울 것이다.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백색의 천사.
이게 몇 번 째인지.. 아리아에 도착한 후로 자잘한 천사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런데 묘하게 전투력은 약한걸… …


아리아의 ‘끝 없는 구멍’은 어디에 있지?
이렇게 안개가 짙어서야 ‘문’이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드래곤 몇이 날개를 펴고 상공으로 올라가보지만,
위에서 보아도 안개에 감싸인 도시는 좀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뿌연 경관 속, 과거 생기 넘치는 도시였을 조각들이 보인다.
깔끔하게 정비 되어있는 수로,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곤돌라,
납작한 패널 위에 올라서면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갈 수 있는 이동수단. 어느 날 갑자기 도시의 모든 사람이 증발한 것 같은 기이한 경관.
이상하리만치 깨끗한 안개 속 도시.


짙은 안개 속, 시장 거리가 늘어서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지만, 방금 따온 듯한 신선한 과일이 나무 상자에 담겨 있고 싱그러운 꽃이 유리병에 꽂혀 있다. 
… … 분명, 2년동안 방치된 도시라고 하지 않았나?


모든 감각이 아득히 멀어지고, 상실하기까지 하는 묘한 기분이다.
마치 몽롱한 꿈 속을 헤매는 듯이… …
내가 방금 어느 방향에서 왔더라?


헬리오스와 떨어져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분명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동시에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건… 착각이겠지?


'뎅-뎅-'
멀리서 긴 종소리가 울린다.
아, 이 것도 착각인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천사들, 새롭게 등장한 소환자들은 그들에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물론 익숙해지지않는 소환자도... 음, 갈색 머리의 여성 소환자... 이신?

 

안개에 둘러싸인 고요한 도시.
잠깐의 휴식중에도 긴장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이신이 보인다.

 

 

 

✺ 아리아의 천사는 유독 '사람'에 가깝다.

 

아리아의 4급 천사, 앙몬드
아리아의 5급 천사, 앙몬드

 

 

✺ ... ... 사람?

 

“어… 안녕하세요? 외지인이신가요?”
...뒤에서 들려온 낯선 이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멀끔한 청년이 라즈베리가 잔뜩 든 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 ...생존자?


유쾌한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안개 속에서 도끼와 칼을 든 성인 두 명이 나타났다.
… … 민간인? 이 도시는, 천사에 완전히 점령된 지가 2년째라고 들었는데?
“어어어? 얼마만에 보는 외지인이야, 이거? 별 일이 다 있네.
젊은이, 아리아는 처음이야?”
“이봐, 그냥 보내기도 섭섭한데 ‘성소’에서 식사라도 제공하지.”
...그들은 앞장서서 그들의 터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차박, 차박… 수로 쪽에서 작은 물 소리가 들린다.
천사인가? 전투 태세를 갖추자 안개 속에서 드러난 것은…
일어서서 곤돌라를 젓고 있는 양갈래의 여자 아이.
“으아, 깜짝아! 누구세요?”
깜짝 놀란 아이는 곤돌라에 가득 실린 꽃더미로 엉덩방아를 찢는다.


뿌연 안개 속.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난다… ... 이런 곳에서?
냄새를 따라 가니 베이커리가 열려있고, 영업중임을 알리는 팻말이 꺼내어져 있다.
“뭘로 드릴까요~ 오늘은 과일로 교환 받고 있습니다…
어? 옷차림이… … 외지인이세요?”


아리아의 얼마나 깊은 곳까지 들어왔을까.
안개 속, 품 안에 과일을 잔뜩 들고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과일은 아리아 북쪽 지대에만 있어서 잠깐 다녀왔거든요.
..어... 어른들이요? ‘성소’에 같이 가실래요?”


분명 아리아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천사를 마주치고,
그들을 섬멸했는데… … 이 눈 앞의 멀쩡한 사람은 대체 뭐지?
‘성소’로 데려다 주겠다며 앞장서는 사람의 뒷 모습을 훑어보아도, 깔끔한 차림새에..
천사의 위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인 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던 천사는 보이지를 않네..

 

생존자를 발견했다. 다른 생존자는? 천사는? 
분명 2년 전, 무저갱이 출현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마주친 천사의 수만 해도 엄청난데, 어떻게 무사한거지?
“아아, 외지인이라 궁금한 게 많으시겠네요. 
저도 1년 전에 이 곳에 파견될 때만 해도 깜짝 놀랐거든요! 
우선 따라 오세요.” 


천사를 공격하고 튄 피를 닦아내던 그 때..
“아아…..!!”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지금.. 지금 무슨 짓을….!”
생존자..인가? 우선 진정시키려, 저것은 인간이 아닌 ‘천사’라고 설명했지만
오열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 한다… ... 


생존자 발견. 어쩐다, 다른 헬리오스에게 알려야 할 텐데.
이 안개 속에서는 소리가 먹히고, 높은 곳에 가 봤자 한 치 앞도 가리어져 연락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우선 도시의 중심부쯤에서 모이기로 했으니.. 그 쪽으로 가볼까.


도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록, 나타나는 천사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어째서지..? ‘끝 없는 구멍’은 도시의 중심부쪽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들었는데… ...


아무리 봐도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를 발견했다.
그를 따라 점점 더 도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데… ...
“어! 뭐야, 벌써 들어가?”
앞장서던 사람이 누군가 아는 체 하며 부르는 것 같아 보니…
또 다른 낯선 이의 뒤에 따라 걷던 익숙한 헬리오스와 눈이 마주친다.
척 보아하니 저 쪽도 ‘성소’인가 뭔가로 안내받고 있는 듯 한데…
눈빛으로 어 너두? 야 나두! 를 교환했다… ... 


아득히 멀리서 들리는 듯한 이 노랫소리는.. 대체 출처가 어디일까?
정말로 노래를 부르는 천사가 있지 않은 이상…
여기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근처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안개 속의 저 커다랗고 흐릿한 그림자는… … 드래곤?
무언가를 발견하여 신호를 쏘았나 보다.
우선 빠르게 합류해보자.


한참을 걷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
익숙한 헬리오스의 얼굴.
그런데 그 옆에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어찌된 영문인지 묻자 어딜 안내해준다고 하더라.
일단 동행할까...


안개 속에서 마주친 낯선 이를 따라 가자,
현을 퉁기면서 합창하는 노랫소리가 가까워진다.
앞서 걷던 이가 소리를 듣고 따라서 흥얼거린다.
“태초에 내게 와주신 빛- 우리와 하나 됨이라 하셨네-”
...찬송가인가?

 

숨 막힐 듯한 적막으로 둘러싸인 도시. 소리마저 안개에 먹힌 듯하다.
주변을 살피다 문득 눈에 띈 황금빛은... 보석을 든 알데바란?
분명히 사람이 보이지는 않지만, 시선이 느껴지는데 저래도 되는 걸까.
저러다 분명 저주받을 거야!



안개 탓에 감각이 둔해진 탓일까, 그만 무언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뭐야 이 단단한 건...하고 올려다보니 알데바란이다.
어쩐지 평소보다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눈치껏 빠지기도 전에 뒷덜미가 붙잡히고 말았다.

 

 

 

 

 

 

 

✺ 어찌된 일인지, 다들 기묘한 안내인을 만난 모양이다.
「성소」에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든다.

 

짙은 안개가 점점 옅어지더니 도착한 이 곳이 바로... ‘성소’.
아리아 중심지에 번영하던 마을이라 그런지, 과연 깔끔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곳과 다를 바가 없는데… …
하늘을 가르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저 새까만 구멍은, 무저갱이 아닌가.


‘성소’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하자, 안개가 사라지고 활기찬 거리가 보인다.
생존자들인가? 싶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아기 형태의 천사가 인간의 머리 위를 떠다니며 꺄르르 웃음짓는다.
이건 대체…?


인구수가 많지는 않아도,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활기찬 마을에 낯설고..
아니 사실은 익숙한 것이 함께한다.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공격하려고 했지만..
깜짝 놀라 저지하는 안내인이 무슨 짓이냐며 무서운 얼굴을 한다.


“전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아리아는 전보다 더 풍요로워졌어요.
보세요.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들이 함께하는 걸요.”
그렇게 말한 안내인은… 눈이 있을 자리가 파여있는
아이같은 형태의 천사와 손 끝을 마주하며 교감한다.


“여길… 떠나요? ..왜요? 2년 전에서야 제 존재의 본질을 깨달았는걸요.
그런 무례한 말씀을 하실 거라면 ‘성소’에서 나가주세요. 불쾌합니다.”
… …’천사’와, ‘무저갱’과.. 공존하는 삶을 원한다고?


생존자들의 마을은 아리아의 중심지에 자리했다.
안내자를 따라 들어갈수록 천사가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
과연, 하늘에 ‘저런 것’을 달고 있었군.


한참을 걸어 「성소」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으나..
묘하게 소름 끼치는 감각에 정찰겸 그 곳을 빠져나와 무작정 먼 곳으로 떨어졌다.
‘우득, 우득,’ 흡사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뼈채로 씹어먹고 있는 소리… …
새하얀 천사는 과거 사람이었을 것을 뜯어먹더니, 허공을 응시하면서 그 자리에서 ‘고치’로 변이한다.


“헬리오스요? 그게 뭐예요? 와, 드래곤이 함께한다고요?
농담이겠죠. 저 뿔도 장신구잖아요? 저희 마을에도 있어요.”


이 곳은 위험하다, 천사는 인간의 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섬멸하러 온 ‘헬리오스’다.
차분히 설명을 해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생존자들.


“왜 나가야 하죠?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요.”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요?”


어린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를 따라하려는 듯 웅얼인다.
…소통이 되는건가? 그럴리가.


넘어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니,
곁에 있던 천사도 그 아픔에 교감하듯 눈물을 흘리며 울음 소리를 낸다.
꼭 진짜 인간인 것처럼 눈물도 흐르는데, 거북한 기분만 들 뿐이다.


“아아, 밖에 있던 것들을 보셨군요.
그 고치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진짜 ‘완전한 존재’의 눈썹이 슥 올라가는데… ... 


「성소」의 천장에 넓게 펼쳐진 것은… … 순간, 밤하늘로 보였던.
하지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 안이 묘하게 울렁거리는 것이, 절대 하늘일 리가 없지.
저건 구멍이다. 세계에 뚫려서는 안 됐을 구멍.


“1년 전에 여기에 파견됐을 때는 저도 놀랐어요.
생존자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같이 온 사람들은… …
으음, 그게 중요한가요. 지금이 좋아요.
혹시 나가시거든 가족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 여기에 새 가정을 꾸렸거든요.”


성소에 하나 둘, 모이는 헬리오스는 저마다 묘한 표정이다.
당황, 경악, 거북함, 궁금증, 그 모든 것을 품고 우리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우선 상황을 알아봐야겠지… …


다행인 건 ‘성소’의 사람들은 외지인인 우리가 상당히 반가운 듯,
이것 저것 챙겨주려고 한다. 
적의보다는 낫겠지.

 

성소 주변에는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키가 작아 높은 곳에 손이 닿지 않는 아이를 대신하여 '천사'가 꽃을 따 준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
만삭의 임산부가 있다니.
그 곁을 축복하듯 날아다니는 새하얀 천사는 꺄르르 웃음짓는다.
마치 ‘진짜 천사’처럼...

 

 

 

 

 

 

 

 

✺ 이들은 천사와 '공존'하고 있다.

 

마을의 청년 무리가 도끼와, 낡았지만 실용적인 연장을 들고
마을 어귀로 나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어딜 가는 거지? 사냥이라도 가는 걸까… ... 


온전한 고치가 보인다. 조사해볼까…
다가가려던 순간, 근처에서 느껴지는 묘한 인기척.
나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말았다.
마을 사람 여럿이 나타나고 그 중 도끼를 든 청년이 ‘고치’에 다가가 그것을 내려찍는다.
‘쩍, 쩌억,’ 곧 틈새가 벌려지고.. 질척한 액체가 그 사이를 흐르더니 손을 집어넣어 사람을 끄집어낸다.
… ...아니, 저건 사람이 아니다.


마을을 벗어나 얼마나 한참 안개 속을 헤맸을까,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 비어있던 ‘고치’와 달리, 아직 손상되지 않은 깨끗한 고치가 보인다.
조심스레 다가가보니… 곧, 부화하려는건가?
살짝 갈라진 틈새 사이로 ‘그것’이 보인다.
사람처럼 불그스름한, 살구빛 살결을 가진… 날개달린 어린 「천사」가 잠들어있다.


연장을 챙긴 마을 사람들이 천에 감싸 안은 무언가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여긴.. 임산부가 있던 그 집인데… ... 
‘으아앙, 으아앙,’ 갓 태어난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
“쉬이-.. 착하지. 이건 세례란다.”
갓 태어난 아이의 입가는 라즈베리빛의 피범벅, 채 삼키지 못한 붉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잠깐만, 저건… ...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들은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주먹을 쥐고 가슴 위에 올려 눈을 감는 모습은..
그들식의 기도인가? 맙소사.


인간 아이와 교감하듯 손 끝을 마주하던 작은 천사는 뒤에서 날개를 붙잡히고 공중에서 다리를 허우적댄다.
천사의 날개를 쥔 청년은 뒤에서 익숙하게 그 목을 긋고,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피를 맞으며 아이가 빙글빙글 돌면서 방방 뛴다.
이건… 이건 뭔가 잘못 됐어.


이 건물은.. 도살장인가? 겉에 걸린 돼지 간판에는 X자로 거친 자국이 나있다.
“아, 구경 해보시겠어요?”
친절한 미소의 여자가 안으로 안내한다. 오래된 나무, 짙은 피비린내..
커다란 해체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은 ‘짐승’이 아니다.
“정말 아름답고, 고마운 존재죠.”
그리 말 한 여성은 주먹을 쥐어 가슴 위에 올리면서 눈을 감고 나직히 기도한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와 닮았다.


“같이 드시면 좋을텐데.”
방금 뭘 잡아서 테이블에 올리는 지 본 모든 헬리오스는,
차마 입에 댈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죠. 분명 고기일텐데, 입에 넣으면 달콤하거든요.
음.. 그러면 빵은 어떠세요? 방금 구웠거든요.”


‘성소’에 초대된 지 하루. 고작 하루다.
시간은 미치도록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과거 아리아의 대형 여관으로 쓰였던 곳을 숙소로 제공 받았고,
헬리오스는 여관의 1층 탁자에 모여 자신이 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미친거지…”


이 곳은 하늘에 있는 ‘끝 없는 구멍’의 바로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마도 그 넓은 아리아의 수 많은 거처중, 일부러 이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울렁거리는 구멍에서는 기이한 소리가 나는 듯 하기도 하고,
고요한 자장가를 불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잠들기 쉬운 밤이 아니겠지.


우선은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천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낼 수 있는 기회,
특이 케이스를 곁에서 기록하고, 샘플 확보를… … 해야하는데,
그런데, 당장 이 모든 짓을 그만두게 하고 싶은 건 나 뿐만이 아닐 테다.


이 곳의 천사들이 유독 온순한 것은 왜일까.
역시 이 곳 사람들이 ‘먹는 것’과 관계성이 가장 커 보인다.
마치 서로를 동족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 기이한 광경,
비틀어진 신뢰 관계의 형성.


“다른 분도 말씀하시던데.. 저희는 모두 여기가 좋아요.
밖엔 무서운 ‘천사’들도 있다고요? 그치만 여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죄송하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내일 바로 떠나주세요.
내일. 바로요.”


아무 것도 입에 대질 못 하겠다.
그나마 넘어가는 건 깨끗한 식수뿐이다.
그런데 왜지, 물에서조차 비릿한 맛이 나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


마을 외진 곳,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어쩐지 섬찟한 느낌이 든다.
발소리를 죽여 조심히 다가가 보자…
남성이 천사를 끌어 안고 그 살결에 애틋하게 입 맞추고 있다..
그만, 그만 보자. 그 뒤는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

 

 

 

 

 

 

✺ 이들은 천사와 '공■'하고 있다.

 

집단 광기.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단체로 잘 못 먹고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걸까.
누가 처음으로 ‘저걸’ 먹을 생각을 했을까.
이 곳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남았나.


“헬리오스라고 했나요? 저기, ‘세례’를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무서울 거 없어요. 이 또한 솔루스가 저희께 주신 선물일 테니까요.
달콤한 맛을 보면 확실하죠. 그렇지 않다면 맛이 좋을 이유가 있을까요?”


이 곳 사람들의 미소가 소름끼친다.
전부, 전부 그걸 먹은거야? 정말?


저 사람은.. 1년 전에 이 곳에 파견되었다는 황실의 정찰병.
“처음 도착했을 때는... 그 분들께 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동료들도 모두… … 하지만, 그 분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으니 모두 빛의 품으로 돌아갔겠지요.
저 또한 그 분들을 제게 받아들이고, 체내에서 하나됨을 느낍니다.
어쩌면 제 동료들의 조각도 저에게 함께 머무는지도요.”


천사는 사람을 먹는다.
이 곳의 사람은 사람을 먹은 천사를 먹는다.
그렇다면 그 죄는 어디로 향하나.


천사는 본래 온 몸이 창백하고 새하얗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고치’안에 있던 것, 태어나기 직전의 천사는
마치 인간처럼 살구빛의 살결… ...
아, 식인을 한 천사구나. 그런 식으로 인간에 가까워진 거구나.


하늘에 있는 끝 없는 구멍이 갑자기 일렁거리더니
쿨럭이듯이 뿌연 안개를 뱉어낸다.
안개는 바로 아래에 있는 이 마을로 내려앉지 않고 그 주변으로 흩어져 내려간다.
이 곳의 안개는 저런 식으로 점점 더 견고해져간 거겠지.


누가.. 먼저 시작한겁니까? 조심스레 운을 뗀 헬리오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인 마을 사람이 누군가를 부른다.
부름에 달려온 것은 10살 남짓한 단발의 남자 아이… ...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아, 저예요.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저.. 장롱 속에서 계속 갇혀있느라.. 아주아주 오래 갇혀있느라…. 배가 고팠거든요.
나와보니까요. 피가 많이 나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먹어봤는데요. 라즈베리 맛이 났어요. 그리고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마을 주민들에게는 저마다의 생활이 있는 듯 하다.
성소를 나가 옷이나 생활에 필요한 재료를 조달해오고, 다 같이 이 곳에 모여 생활한다.
시장의 도시 ‘아리아’를 100명도 되지 않는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2년동안 물량이 떨어질 일은 없었겠지.


지나오면서 보았던…. 싱싱한 과일이 나와있던 시장들은 뭐지?
다른 사람들은?
캐물어봐도 마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글쎄요? 축복 아닐까요?”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 갓 태어난 아이의 아비는 어디 있을까?
"그런 게 왜 필요한가요. 천사께서 제게 깃드신 거랍니다."
모친이 안고 있는 신생아는 창백한 피부에,
홍채 없이 흰자위만 있는 눈동자를 데록 데록 굴리고 있다. … 어제보다, 자라지 않았나?


나무 휠체어에 탄 만삭의 여성… … 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남성으로 보이는 이의 배가 비이상적으로 크게 불러있다.
일부러 드러내둔 팽창한 복부의 살결엔 울긋불긋한 핏줄이 서 있고, 약간이지만 안이 비쳐보인다.
무언가… 품고있다.
“제게도.. 잉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죠..
그만큼의.. 고통이 따르지만 시련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렇게 말하는 중년의 남자는 숨 쉬는 것 조차 버거워보인다.


어제 태어난 신생아는 붉은 고기를 먹고 있다.
만삭의 남성… 도 역시 같은 것을 먹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온순한 천사를 만져본 적은 처음이다.
인간과 같은 부드러운 살결… …
‘그’가 옅은 미소를 짓고, 이마에 키스하려던 것을 한 발자국 물러나 피했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어야만 해.


“천사와 성애적인 관계를 갖기도 합니까?”
저렇게 대놓고 물어보다니… … 하지만 궁금하니까 조금 옅들어볼까?
“음… 그렇게 물어보셔도.. 글쎄요. 과분한 일이긴 하지요.”
우웩. 토나와.

 

“저기… 정말 드래곤이시면, 혹시 회복 마법..이라던가 그런 것도 하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을 붙여온 이를 따라가자...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한 두 다리가 있던 남자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이제는 없는 다리 근처를 꽉 잡고 있다.
붕대로 처치는 깔끔히 된 것 같지만… 도대체, 왜… ...?
어두운 실내는 마약성 향을 짙게 피워둔 상태이다.


다른 헬리오스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결정했다.

 

 

 

 

✺ 낙원은 폐기 처분한다.

 

없앤다. 이 곳은 즉시 ‘폐기 처분’한다.
헬리오스가 내린 결정은 그 것이다.


폐기 처분.
폐기 처분.


위험할 수 있으니 멀리 떨어지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선한 미소를 띄고 있던 마을 사람은 분노하여 손에 도끼를 들고 우리를 공격해온다.


이 곳의 천사는 유독 공격력이 약한 것 같더니..
공격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공격할 의지가 없어보인다.
그저 날개를 움직여 도망치고, 버둥거리다가, 이내 소환자의 검에 찔려 추욱 늘어져 ‘철퍽,’ 바닥에 떨어진다.


‘엉엉엉엉… 아아아아… 제발…’
바닥을 손톱으로 긁던 청년이 애원하며 매달린다.
“그만, 그만….. 제발……”


더 이상 여기에 머물고 싶은 헬리오스는 없을 것이다.
한 달간의 여행으로 스쳐 지나온 아름다운 ‘아르투스’의 새파란 풍경이 벌써 흐릿하다.
무겁고 비릿한 공기에 숨이 막히고, 시간 감각이 아득해진다.


즉시 모든 천사를 섬멸한다.
아니.. 이번에는 ‘학살’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조그마한 아이가 집에 숨어, 제 몸만한 천사를 끌어안고 숨 죽여 울고 있다.
한 손에는 아이 손에도 들어갈만큼의 작은 칼이.
다가가는 순간 휘두르면서 소리를 지른다.


이게 무슨 광경이지.
새하얀 돌바닥은 피에 젖어 웅덩이가 생기고,
아름다웠던 마을은 엉망으로 망가져있다.
아, 그렇지. 나는 이 것을 죽여야한다.


천사가 ‘학살’되는 광경에 울면서 쓰러진 노인이,
돌연 일어서더니 맨 발로 뛰어다니면서 미친듯이 웃는다.
노인의 힘으로는 들리지 않을 커다란 도끼를 들고 제 머리를 내리찍더니 철퍽, 쓰러진다.


지금까지 긴 생을 살며 이런 ‘인간’들을 본 적이 있나.
비슷한 종류의 것이라면 보았지만, 그 무엇과도 다르다.


검으로 천사를 벨 때, 그 앞에 달려든 것은… 사람이다.
인간의 피가 튀고, 그런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보호한 천사가 안전한지 확인하더니 기쁜 웃음을 짓는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찌른 감각은, 천사를 베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

 

 

 

 

 

 

✺ 헬리오스가 예일에 복귀했다.

 

아리아의 천사가 모두 섬멸되고, 끝 없는 구멍이 닫혔다.
안개는 녹듯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민간인은 알 수 없는 병증을 보여 예일로 후송되었다.


헬리오스는 우선 예일로 복귀한다.
아르투스의 천사는 모두 사라졌기에, 드래곤과 함께 장거리 비행을 할 필요는 없어졌다.
리무스에 있는 이동마법진을 타고 예일로 빠르게 복귀했다.
아, 이제는 황성이 돌아올 곳인가.


기사의 검은 가장 완벽한 살상무기임이 증명되었다.
천사 뿐만 아니라, 소환자의 재생 능력도 무력화시킨다.


유 라와 헨리 그레이필드에게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건... 완전 회복이 불가능하겠는데... ...
헨리는 이대로 헬리오스 활동이 가능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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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르디

 

 

 

 

 

" 안개에 잡아먹힌... ... "

 

GAME, Assassin's Creed

 

✺ 아리아로 가는 길은 끝도 없이 푸른 물결이 펼쳐져있다. 밝은 에메랄드, 짙은 청록, 다시 하늘이 비치는 것처럼 투명한 물빛으로. 다채롭고 아름다운 경관이다.

 

헬리오스는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까지 쭉 비행으로 이동,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저녁까지 이동,
가는 길에 보이는 자잘한 천사를 해치우며 ‘아리아’로 전진한다.


비행으로 이동중, 오늘 묵어갈 곳으로 내려앉은 이 곳은 아르투스의 대도시중 하나 ‘리무스’라고 한다.
갈라테이아 황제의 상을 받아 황제의 두 번째 이름으로 도시 이름이 개명되었다고 하는데…
과연, 어딜 가든 활기가 넘치고 도시를 흐르는 물은 투명하여 바닥의 산호와 작은 물고기들이 들여다보인다.
상인들에게서 열렬한 환대, 아낌없는 고기와 술을 제공받았다.


아르투스는 수상의 낙원.
높은 곳에서 비행을 하면서 내려다보면 커다란 호수가 곳곳에 놓여있고, 크고 작은 집들이 그 한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간혹 섬처럼 있는 작은 육지에도 오밀조밀한 생태계가 서식한다.
그 중 거대한 땅에는 도시가 형성되어있는 식이다.


흰 자작나무로 만들어진 오두막같은 정거장이 물길 한 가운데에 우뚝 서있다.
자세히 보면 수면 아래로는 선로가 놓여있는데,
그 선을 따라 달리는 열차 아티팩트는 아르투스에서만 볼 수 있다.


물 위를 정처없이 부유하는 천사가 보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장 가까이에 있던 헬리오스가 빠르게 다가가 전투를 벌인다.
이크, 천사를 가른 소환자는 물에 처박혀버리고 그 일대는 쓰러진 천사의 피로 새빨갛게 오염되고 만다.


아르투스의 물은 바다처럼 염도가 높은 곳도 있고, 숲이나 강처럼 민물인 곳도 있다.
물의 흐름에 따라 때때로 바뀐다.


아르투스의 상공을 비행할 때,
한 드래곤 당 앞 뒤, 양 옆의 1km정도의 거리와 일정한 속도를 유지하며 대열을 지킨다.
가는 길에 보이는 천사를 놓치지 않고 제거하기 위함이다.
지루한 드래곤은 잠시 자리를 떠나 산책을 다녀오는 정도는 허용되고 있다.



고독한

 

「소환자」


아르투스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다는 ‘아리아’에 가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본체로 쉼 없이 날아도 5일은 족히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드래곤에게 들리거나, 태워져 이동하고 있다.
그래, 이게 바로 판타지지!


드래곤과 함께 이동하는 드라마틱한 경험으로 새삼스러운 감동을 느낀 것은 처음의 30분으로 충분했다… …
멀미를 하는 소환자가 발생하고 있고, 무엇보다 고도가 높은 곳의 매서운 바람이 춥다… ...



「드래곤」


아르투스 중에서도 가장 남쪽에 있는 ‘아리아’에 가기 위해서는 드래곤의 본체로 쉼 없이 날아도 일주일은 족히 걸린다.
거기에 휴식, 훈련, 천사 제거까지 병행하니.. 목적지에 도착까지 한 달쯤 걸릴까.
우리는 소환자를 들거나, 머리나 등에 태워 이동하고 있다.
이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나 참… 살다 보니 별 짓을 다 하는군.


소환자들이 바람이 불지 않는 낮은 곳으로 비행하면 안되냐고 성화이지만… …
빠른 이동을 위해서는 높은 곳에서 강한 바람을 타고 가는 것이 제일이다.
기아스까지 각성한 녀석들이 나약한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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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하라. 찬란한 그 빛을."

 

✺ 찬란한 등불이 빛나고, 어딜 가도 음악과 웃음 소리가 들린다.

✺ 소집 장소로 지정된 곳은 예일의 황성, 중앙홀.
은은한 조명이 밝혀진 그 곳으로 헬리오스와 새로운 얼굴이 모이고 있다.

 

솔루스의 날.수 많은 행사들 중 스케일로서도, 중요성으로도 손꼽히는 최대의 축제이자 종교적 기념일.
유일신 솔루스의 은총에 감사하며 태양빛을 쬐고 자란 음식으로는 만찬을, 꽃으로는 장식을 만들어 신을 기린다.


수 많은 노점상들이 앞다투어 자리잡힌 광장에서는 갖가지 물품이 팔리며, 노래와 춤, 그리고 웃음 소리가 가득하다.
이번 해에는 특별히 첫 성과를 세우고 돌아온 헬리오스를 축복하는 의미가 더해져 더욱 활기차다는데 …


노점상에는 갖가지 물건이 판매되고 있다.
이건… 아티팩트?


구석에 있는 마법 시약 노점상에서는 작은 유리병에 담긴 소모용 아티팩트가 판매되고 있다.
어디 보자… … 무엇이든 진심만을 말하게 되는  진실의 약? 효과는 30분... 


구석에 있는 마법 시약 노점상에서는 작은 유리병에 담긴 소모용 아티팩트가 판매되고 있다.
어디 보자… … 두근거리는 사랑의 묘약? 효과는 30분... 


솔루스의 날에는 축제 기간인 일주일 내내, 집집마다 장작불이 꺼지지 않게 한다.
꺼트리면 다음 해 동안은 축복을 받기 어렵다나… ... 


솔루스의 날에는 축제 기간인 일주일 내내, 거리 여기 저기에 장식된 등불이 꺼지지 않는다.
아기자기한 등불이 장식되어있고, 그 근처엔 유리 세공이 놓여있어 아름답다.


서로 새로운 얼굴을 마주친 헬리오스와 소환자, 그리고 드래곤… ... 


갖가지 형태의 등불을 파는 노점상이 있다.
술루스의 날에는 등불을 선물해주는 것에 ‘밤에도 길을 잃지 않도록, 어딜 나아가도 헤매지 않도록.’
그런 의미가 담겨져있다.

 

 

✺ 새로운 소환자에게 남은 시간은 이틀.

성수를 마셔도 죽을 확률이 높고, 마시지 않는다면 반드시 죽는다... ...
그리고 그 후에는 '기아스'에 각성하여 새로운 신체..
이게 무슨 전개야. 설명을 들어도 납득하기 어렵다.

 


예일의 황성 곳곳에도 등불이 장식되어 있다.
시종들이 돌아다니며 등불을 켜고, 불이 꺼진 곳에는 다시 빛을 놓고 있다.


축제가 한창인 황성 밖 거리와 다르게, 황성 안은 은은한 조명이 포근하게 빛나고 평소처럼 고요함을 유지한다.
...그랬을 것이다. 헬리오스가 도착하기 전 까지는.


늘 그랬듯 헬리오스 전투복을 입고 나왔던 이의 주변으로 인파가 몰린다.
전 세계 어디를 가든 헬리오스 등의 문양이 새겨진 깃발이 나부끼니, 못 알아볼 리가 있나.
영웅이라 부르며 눈을 빛내는 민간인들에게 둘러싸이고 싶지 않다면 다른 옷을 입는 게 좋겠다.


노점상에서 드래곤의 뿔을 팔고 있다.
물론 진짜 '뿔'은 아니다. 요새 유행하는 드래곤 뿔의 악세사리이다.
어찌나 진짜처럼 만들었는지, 진짜 드래곤이 뿔을 내놓고 다녀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


노정삼 옆으로 깔끔한 야외 바가 차려져있다. 저건... 이즈? 
"아,아닌데요... 그런 사람..아닙니다...."
아닌거로 해주자.. 뭔가 주문해볼까? 가령 친절한 바텐더의 미소라던가...

 

 

 

✺ 성수를 마신 자들은 황성 깊숙한 곳으로, 바깥은 아직 솔루스의 날이 한창이다.

 

 

즐거운 솔루스의 날,황성 구석에서는 느즈막히 합류한 이들이 성수를 마시고 기아스의 열병을 견디고 있다...
...이 곳만은 적막하다가도, 누군가의 고통에 찬 신음이 들려온다.


고통에 찬 비명이 들려오면 그 곳으로 시종들이 수건을 들고 뛰어간다.
그 어떤 치유 마법도, 권능도, 마약성 진통제도 듣지 않는 종류의 고통... ...


축복과 환희로 가득한 축제 거리와는 다르게 황성 안에서는 고통에 몸부림 치는 소환자와 드래곤들이 보인다. 


분명 성수를 처음 마셨던 사람들 중, 단 한 명만이 눈을 뜨지 않고 있다가 이번에 깨어났다지?
레일리아 윤... 이라고 들은 것 같은데, 그 소환자에게도 뒤늦은 열병이 찾아온 모양이다.


솔루스의 날, 시작은 동네 야시장같은 분위기이더니 온갖 곳에 꽃이 놓이고
문마다 아름다운 등불이 걸리면서 점점 더 화려해진다.
태양신을 위한 축제라더니, 낮보다는 밤에 더 구경하기 좋은걸.


축제 한 편으로는 드라켄헤임의 작은 도시에서 끝 없는 구멍으로 발생한
인명 피해를 기리는 등불과 흰 꽃이 촘촘히 쌓여가고 있다.
한 송이 얹고 갈까… ... 


하늘에 날리는 등불을 선물하기보다,
작은 새장처럼 생긴 세공품같은 등불을 선물하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한다.
어디에서든 길을 잃지 않기를, 앞을 밝히는 등불이 되어주길… …


광장 한 가운데 아주 높이 깃발이 솟아있다.
나부끼는 천에는 헬리오스의 문양이, 그 아래에서는 헬리오스를 칭송하는 노래를 부르고, 천사를 무찌르는 연극을 한다.
...가만, 저건 드래곤 ‘렌’아닌가? 어쩌다가 저기에 섞여 있는 걸까.
또 부탁을 거절하지 못 해 연주해주고 있는 거겠지…


‘영웅이 술 잘 말아주는 집’은 며칠째 성황리에 영업중인 것 같다…
…이런, 그만큼 진상도 있는 모양이네.


“들었어? 이번 솔루스의 날에는 아주 특별한 불꽃놀이가 있다던데.”
“그래봤자 마법사들이 뭐 쏘는 정도 아니야?”
“아니라던데? 금요일 밤 9시래.”
“명당 찾아놔야지!”

 

먹으면 2시간동안 동물의 귀와 꼬리가 생기는 과일이다..!
개중 꽝은 아예 동물로 변해버린다는데… ...
이런 거 식약청에서 허용한거야? 그냥 팔아도 되는 거?


먹으면 2시간동안 동물의 귀와 꼬리가 생기는 과일이다..!
개중 꽝은 아예 동물로 변해버린다는데… … 드라켄헤임에서는 자라지 않는 종이다.
키무스 멕시아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열매이지... 

 

‘영웅이 술 잘 말아주는 집’은 며칠째 성황리에 영업중인 것 같다… …
이런, 그만큼 진상도 있는 모양이네.


연에서 온 악단이 공연을 하고있다.
가희 주변으로 춤을 추는 무용수들이 물결처럼 색색별의 천을 흩날린다.
이런 음악은 예일에서도 흔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런데 저 익숙한 모습은.. 렌?


축제 노점상 구석에 조촐한 점집이 보인다.
눈을 감고 있는 점쟁이 ... ... 익숙한 얼굴인데, 이 쪽도 모르는 척을 해줘야 하나?
근데, 자는 거 아니지?

 

등불을 파는 가게가 보인다. 고급스러운 간판에, 아름다운 등불이 걸려있다.
어디 보자 가격이... 30만 에냐? 이건 50만? ...100만 에냐짜리도 있어?
"일반 등불이 아니라 모두 마도석으로 만들어진 수공예 아티팩트라서 값이 나가는 편이지요.
이 쪽 것은 어떠십니까. 불을 켜두면 좋은 꿈을 꾸게 하는 등불입니다.
안에 더 아름다운 것이 있답니다. 둘러보시겠습니까?"
밖에 나와있는 것만 해도 이 정도 가격이면... ...

 

 

 

 

✺ 솨아아아-... 이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한동안 그치지 않겠는걸.

 

축제인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내리기 시작한 비는 언제쯤 그칠런지...
빗방울이 점점 굵어지지만, 솔루스의 날에 켜진 등불은 보호 주문이 걸려있어 축제 기간동안 빗물로는 꺼지지 않는다.


빗방울이 거세지나 했더니, 마법사들이 커다란 중앙 광장을 주변으로 거대한 원을 그리고,
거기에 보랏빛의 꽃을 꽂고 스펠을 외우더니 커다랗고 둥그런 보호 장벽이 생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빗방울이 그 주변을 타고 흐르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비가 내리자 광장의 악단은 즉흥적으로 선율을 바꾸어 연주한다.
어쩐지 애달프기도 한 잔잔한 음악이다.
그에 맞추어 춤을 추던 사람들의 스텝도 느릿하게 변한다.

 

 

 

 

 

 

 

 

《 천년전쟁의 진실 》

 

 

걷다보니 황성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버렸다. 수풀이 무성한 정원이 보인다. 이렇게 구석에 정원이 있다니…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듯, 다른 정원과 달리 이 곳만은 어두운 미로같다.


무성한 수풀을 거두며 미로처럼 얽힌 정원을 헤맨 끝에 나무 판자로 엉성하게 지어진,
누군가의 비밀 기지였던 것으로 보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아주 오래된 지도에는 이끼가 피어있고, 녹이 슬어 당장이라도 부스러질 것만 같은 잡다한 물건이 늘어서있다.
얼마나 오래된 걸까..?
그 중에서도 상태가 양호해보이는 양피지가 보인다. 


정갈한 필체로 알 수 없는 이계의 언어가 쓰여있다.
유독 이 두루말이 종이만은 상태가 깨끗한 것이,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마법이 걸려있는 모양이다.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약도와 함께 어느 곳이 X 표로 체크되어 있다. 아무래도 해석하려면 명석한 드래곤의 도움이 필요하겠는데?


보관마법이 걸려있다지만.. 이 물건은 족히 천 년도 더 전의 것.
이렇게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는 마법이 걸려있다니,
이것의 주인은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나보다.
양피지의 구석에는 무스타심 황가의 인장이 찍혀있다.
아하, 황가 누군가의 기록인가 보다.



누군가에게 진실을 알리고자 펜을 든다.
우선 나와 그의 만남부터 설명하자면... 때는 456년, 내 8살 생일날이었다.  아버지께서 주신 아리아-나의 작은 망아지-와 함께 황가의 사냥터로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벌써부터 어른이 되었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나는 어른들 몰래 홀로 사냥터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고, 그를 만났다. 사람과 다른 아름다운 비늘을 가진 작은 드래곤.
숲의 요정인 줄 알고, 사냥에 성공하면 칭찬받겠지 싶어 덤벼들었다가 크게 혼쭐이 나고 말았지만, 그와 친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황가의 사냥터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헤츨링으로 시작되었던,
천년 전쟁의 진실이 적혀있는 기록으로 보인다… 이 진실을 로드에게, 동족에게 알릴까?




다만 여기부터는 문장이 훼손되어 있어 알아볼 수 없다.
보존 마법에 보안 마법까지 함께 걸려있는 듯 한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보안 마법이 더 강력해져있다.
...이 양피지만큼 오래 살아온 누군가의 피가 있다면,
까다로운 복구 해석 마법을 써볼 수 있을지도..?
하지만, 천년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에 태어났던 드래곤이라니, 대체 누가?


 


자신을 아마빌리스 에르메트라 소개한 그는 용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황성에도 종종 용이 찾아오지만,
먼 발치에서만 보았기때문에 그와 대화를 하고 있는동안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해츨링의 보호자는 아인 히비스커스라는 드래곤이라고 했다.
아름다운 금발의, 붉은 꽃이 잘 어울리는 이라고… …


아인 히비스커스라는 드래곤에게는 피로 상처를 치유하고 정화하는 권능이 있다고 한다.
그 피가 붉은 꽃의 결정 형태로 변한다는데,
드래곤의 권능을 본 적이 없어 그저 동화속 이야기 같았다. 


커다란 마물에게 쫓기는 어린 아이와 금빛 해츨링이 보인다.
반사적으로 그들을 따라가려 했으나 이 곳은 미궁 속… 금새 사라져버렸다.


분명 다 같이 양피지 앞에 서 있었는데.. 이 주변은… 여긴 어디지? 숲인가?
“황자님은 아직도 못 찾았나?”
“황가의 사냥터라서… 너무 넓습니다.”
“그래봤자 아이의 걸음이니 멀리 가지는 못 하셨을 게다. 서둘러.”


깊은 숲 속….. 생생한 풀내음이 난다.
“이 쪽에도 안 계신다.”
“이게 무슨 난리래요.”
“뭐, 별 일이야 있겠어.”


마물이 어린 아이와 해츨링을 쫓아 빠르게 달린다.
주변의 숲은 온통 헤집어지고, 해츨링이 날개를 퍼덕여 쓰러진 아이를 일으킨다.


어린 해츨링은 아직 권능을 다룰 줄 모르는 모양이다.
마물에게 위협당하는 상황에 급하게 브레스를 쏘아 보려 하지만,
작은 불길같은 것만 연신 콜록이며 뱉어낸다.


마물 대신 인간 아이의 앞을 막아선 해츨링의 몸에서 빛이 번쩍인다.
아마도, 처음 쓰는 권능.
마물의 몸에 불이 붙지만.. 마물의 날카로운 발톱이 해츨링을 향했다.
잠깐…!! 안돼, 막으려는 순간 눈 앞의 장면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어딘가에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이 들더니.. 손,발이 누군지 모를 아이의 것으로 바뀌어있다.
그리고 눈 앞에는 거대한 마물. ‘나’와 마물 사이에 뛰쳐든 것은 금빛의 해츨링.
시야가 빛에 감싸이고…. 뜨거운 감각, 어질한 느낌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어딘가에 빨려들어간다는 느낌이 들더니.. 손가락이 사라지고 손, 발이 작은 드래곤의 그것으로 바뀌어있다.
그리고 눈 앞에는 위험에 처한 어린 아이와 거대한 마물.
몸이 저절로 움직여 아이와 마물 사이에 뛰어들더니, 가슴에 날카로운 발톱이 박히고…
몸 안에서부터 뜨거운 감각, 어질한 느낌과 함께 현실로 돌아왔다.


금빛의 해츨링이 권능을 사용하여 마물을 불태우고,
제 몸까지 불태우더니 쓰러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 


쏘아진 권능은 마물을 향했지만, 뒤에 있던 아이에게도 닿고 만다.
드래곤의 것이라기엔 미약했으나 작은 인간 아이에게는 그렇지 않다.


마법에 휩싸인 뒤로,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다.
정신이 까무룩 꺼졌다가도 다시 어지럽게 돌아오고,
빙글빙글 도는 천장이 보였다가 주변은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가득하다.
...헉, 크게 숨을 들이쉬니 다시 현실이다.


...여긴 어디지? 몸은 왜 이렇게 불편하지? 시야는 왜 이렇게 답답하지?
더듬더듬 신체를 확인해보니 누군지 모를 어린 아이의 몸,
온 몸을 감싼 붕대와 짙은 약초 냄새…
문을 열고 들어오던 누군가가 비명을 지른다.
“황자님께서…! 깨어나셨… …!”


중환자로 보이는 어린 아이가 침대에 누워있다. 말을 하고 싶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곧 괜찮아 지실거예요.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황제께서 드래곤을 용서치 않을겁니다.”


불꽃같은 마법에 감싸이고 눈을 깜빡이자 … … 여긴, 예일의 황성?
주변에 서 있던 헬리오스는 보이지 않는다. 복도에 덩그러니 서 있자 무장한 병사들이 지나가는데… …
손길이 닿으려 하자 연기처럼 사라지고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린다.
“피해가 심각하군.”
“그들의 권능은 마법을 초월하니까… …”


“믿기세요? 두 달만에 깨어나신 거라고요!” ...이게 무슨 소리지?
“저기, 그럼 그 애는 어떻게 됐어? 있잖아, 황금색 드래곤.”
“걱정 마세요. 황가는 승리할 겁니다.”


쾅,쾅!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니 책상을 주먹으로 몇 번이고 내리치고 있는 소년이 보인다.
“아니야.. 그게 아니라고! 왜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거야!!”

“에르메트.. 내가 어떻게 하면 좋아?”


수 많은 병사, 마법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황제의 명을 받고 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배신의 종족은 황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황자의 몸에 남은 흉터는 그들의 권능으로 인함이다!”


“결국 전쟁이 터졌네요. 황제께서 선전포고를 하셨습니다.”
“전쟁같은 거, 왜 하는 거야?”
“금방 끝날 겁니다. 대현자께서 길어봐야 10년이라고 하셨어요.”


“20년이 지났어요. 이 전쟁에 끝이 있기는 합니까? 아버지!”
청년이 소리친다.
“이걸 드래곤측에 보내게 해주세요.”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건네지만... 
“늦었다.”
노인은 글을 훑어보더니 장작불에 던져버린다.


마법에 휩싸인 뒤로 얼마나 걸었을까, 눈 앞이 밝아지더니… 콜로세움의 중앙이다.
사방에서 야유하는 소리가 쏟아지고, 에메랄드빛 그물에 잡혀 바닥에 납작하게 엎드린 상처투성이의 거대한 드래곤이 보인다.
“평화를… 바란다고.. 하지 않았나…”
드래곤이 말하지만.. 관중의 야유에 묻혀 아무도 듣는 이가 없었다.


짙은 풀내음이 난다. 다그닥, 다그닥, 말을 타고 빠르게 달리고 있다.
주변의 풍경이 정신없이 스쳐 지나가고.. 뒤에서 뜨거운 불길이 느껴진다.
“도망가도 소용 없다!”
“..어째서입니까. 드래곤 님! 분명 친선을…!”
“너희들이 먼저 속이지 않았느냐. 15년 전의 일을 벌써 잊은 것이냐!
구경거리가 되었던 자매의 울음이 아직도 들리는구나!”


…익숙한 예일의 황성 복도, 깊숙한 곳에서 시종들이 속닥거리고 있다.
“막내 황자님께서 미쳤다는 거.. 사실일까?”
“갈수록 헛소리만 늘어나시고… 눈빛도 이상해지신 것 같아..”
“어릴 때는 그렇게 총명하시던 분이… …”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방 안.
수척한 얼굴의 청년이 벽을 보고 중얼거리고 있다.
“있잖아, 에르메트… 내가 그 때 어떻게 해야 했을까… …
이제 네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정말 다 꿈이었을까?
정말로 내가 미친거라면? ...하하..”


어둠 속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는, 인간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치만 황자님, 엄마도 아빠도 드래곤은 배신의 종족이랬는걸요.”
“맞아요. 드래곤이 먼저 인간을 잡아먹기 시작했다고 했어요!”


맨발로 뛰고있는 노인이 보인다. 황성 곳곳,
자신만이 아는 비밀 통로를 통해 성을 빠져나와 다리 밑에서 누군가와 접선한다.
“그게 사실인가?”
“네, 드래곤 측에서도 평화를 바라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아인 히비스커스.. 라고 하더군요.”
“아인 히비스커스... …라면, 에르메트의….”


방의 구석에서 무언가 중얼거리는 노인이 양피지에 무언가를 휘갈기고 있다. 
“아마빌리스 에르메트.. 아인 히비스커스.. 아마빌리스 에르메트.. 아인 히비스커스..
아마빌리스 에르메트.. 아인 히비스커스.. 아마빌리스 에르메트.. 아인 히비스커스..
아마빌리스 에르메트.. 아인 히비스커스.. 아마빌리스 에르메트.. 아인 히비스커스..”
“나 만큼은.. 잊지 않을거야… …”


이 곳은.. 황성의 옥탑 꼭대기 방. 누군가 중얼거리며
새 것으로 보이는 양피지에 기록을 하고 있다.
“언젠가… 이 진실을… 누군가에게….”

 

 

 

콥빠냐

회의가 종료되고,  헬리오스는 각자의 생각을 안고 흩어진다.

 

 

"음…내 이름이 뭐였더라?"
긴 머리의 헬리오스 대원이 말한다. 축제에서도 저런 말을 한 것 같은데…
…? 아니, 아니다. 저런 사람은 본 적도 없다. 착각한 모양이다.


맨발에 검은자위를 가진 드래곤이 지나가자 순간 머리가 아득해진다.
내가 왜 여기 있지? 나는 누구였더라…?
…아.


숱이 많고 긴 머리를 산발로 풀어헤친 형체가 수풀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다가 뒤 돌아본다.
주변에는 파헤쳐진 꽃밭이, 양 손에는 싱그러웠을 꽃을 잔뜩 쥐고 활짝 웃는다.


"엉엉엉엉... 엉엉엉엉....흐어엉...."
소리내어 울면서 비틀비틀 걷는 베르단디가 보인다.
이번엔 또 무슨 일로 우는 걸까... 싶더니,
"흐흐.." 작게 키득거리면서 춤을 춘다.


지성의 있는 생물의 호기심과 지식욕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황성 복도에서 분명 금발의 쌍둥이 중 하나인 작은 드래곤이 당신을 붙잡는다.
"혹시, 황가의 비밀서고는 어떻게 들어가는지 아시나요?"
......황가의 비밀서고...? 잘못 들은거겠지?


황성의 작은 정원, 작은 금빛이 물결치는 뒷모습이 보인다.
응? 어디선가 차 향기가....
세렌이랬던가?


 요즘 황성에서는 괴소문이 하나 떠돈다. 똑같이 생긴 아이가 엄청 떨어진 장소에서 목격된다고.
목격자들은 하나 같이 물결치는 긴 금발의 소녀를 분명 보았다고 하는데...
황성 안에 다른 이로 변신하는 마물이라도 나타난 걸까? 아니면 드래곤의 권능?


황성의 작은 정원, 작은 금빛이 물결치는 뒷모습이 보인다.
응? 어디선가 스콘 향기가....
스테렌이랬던가?


"다른 드래곤님이 아니었으면 정말 죽었어."
"폭군이라더니 정말…."
질렸다는 얼굴로 목을 매만지는 한 시종의 목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다.


"실례."
깜짝이야, 인기척은 없었는데. 드래곤? 인간?
장신에 검은 후드를 쓰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는 큰 키에도 불구하고 놀랍도록 조용하고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정원 구석에서 수상한 검은 건초더미를 봤다는 말이 시종들 사이에서 돈다.
시든 풀을 모아놓은건가 하고 다가가면 털 같은 더미 사이에서 빛나는 눈을 마주친다고.
글쎄, 아마 그건...


홀로 있다 해서 당신의 말 또한 홀로 있는건 아니다.
밤말은 용이 듣고 낮말은 드래곤이 들을 수도 있잖은가.
그러니 크고 북슬거리는 드래곤이,
당신이 찾던 물건의 위치를 넌지시 알려줘도 놀랄건 아닐테다.


헤그나일이 구석에 그늘을 만들어 낮잠 타임을 즐기고 있나보다.
...잘 보니 양옆에 흰색 드래곤 둘도 보이는데?
본인 자리인 것 마냥 다리까지 쭉 뻗고 세상 편하게 잠들었다.
저런 빈대 쌍둥이들...


하얀 드래곤 하나가 보석을 툭툭 흘리며 복도를 걸어간다.
저기요! 이거 놓고 가셨는데요!


최근 황성 내에 종종 취객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무성하다.
설마, 이곳이 어떤 곳인데... 어라? 저기 나무밑둥에서 자는 하얀 누군가가 혹시?
... 쯧쯧, 곧 경비병에게 끌려가겠군


최근 백발에 보석같은 뿔을 지닌 드래곤님에 대하여 의견이 분분하다.
여자다. 남자다. 키가 작다. 크다. ... ... 같은 드래곤이 맞긴한거야?


황성의 어딘가, 리화가 검은 물체를 정비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물으면 말해도 모를 것이라고 웃는다.


시종이 식기를 들고 지나가다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려하자
천리화가 깨지려는 것들을 순발력 있게 받아낸다.
"(식기) 괜찮아요?" 시종에게 묻는 것 같진 않다...


황성 구석의 풀숲, 수많은 새들이 노래하듯 지저귀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말 많잖아…….
거의 새에게 파묻힌 듯 누워있는 인영이 이제 아프지 않으니 돌아가라며 성질을 부리고 있다.
그러니까... 아이사타?


정원에 사람과 동물의 발자국이 잔뜩 찍혀 있다.
사슴에 강아지, 고양이, 산양에 늑대까지… 다 어디서 온 거야?
가까이 날아온 새가 쪽지를 전한다.
[정원 더러워졌네. 미안, 고의는 아니었다.]


톳톳톳-
누군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한쪽으로 망설임없이 뛰어간다.
흘러내리는 옷과 연한 분홍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리는 것을 보고 있으니,
곧 발걸음을 멈추어 반대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한다.
"이쪽 길이....아니던가?"


"저기...~"
갑자기 위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고개들어 소리가 들린쪽을 바라보니 나무에서 내려가지 못하는
분홍빛 여인이 곤란하게 웃으며 도움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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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러운 것."

 

 

✺ 공간에 뚫린 검은 구멍 ... ... 

 

드디어 토벌이 시작되었다.
헬리오스에 영광을, 그리고 승리를!


토벌을 위해 드라켄헤임의 외곽 지역에 있는 인간의 마을..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난 ‘끝 없는 구멍’근처에 도착했다.
마을과는 거리가 있는 덕에 큰 인명 피해는 없었다고 한다.


‘끝 없는 구멍’은 멀리에서부터 공간의 어느 기점에 검은 구멍이 뚫려있는 듯이 보인다.
텅 비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그득 들어차 있는 것 같이도 보인다.


이 구멍에서 나오는 천사들은 비교적 약한, 5급에서 4급까지의 천사들이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지. 이 정도라면 드라켄헤임의 강한 마물과 비슷한 정도다.


채 다 죽이지 못한 천사가, 며칠 후 좀 더 강한 힘을 가지고 나타났다.
최대한 빠르게 섬멸해 둬야겠는데…


하루의 토벌이 끝나면, 끈적해진 몸을 씻어내리거나 치료를 받는다.
그렇게 이어져가는 토벌은 꼭 전쟁 속에 들어온 기분을 들게 만든다.
하긴, 천사와의 전쟁이라면 전쟁인가.


다행스럽게도 라 시르에서의 정기보고 중 사라진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소환자들의 재생력이라면 믿고 있어도 되겠지. 오히려 드래곤 쪽이 걱정인 걸까.
그래도 약한 천사이니까, 지금은 헤어질 염려를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피곤이 몰려들지 않는다면 거짓일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해나가야 할 수 많은 싸움 중 이것은 전초전일 뿐이겠지.
마음을 가다듬어야겠다.


몸의 소모가 큰 탓인지, 자꾸만 무언가를 먹게 된다.
김치- 는 꽤 맛이 괜찮았었지.
지친 이들끼리 한데 모여 배를 채우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힘에 부칠 땐, 다른 이들이 지원해주러 오는 것이 든든할 따름이다.
동료라는 건, 이런 걸까?

 

 

「드래곤」

 

인간에게 ‘천사’라 명명받은 저 것은, 언제 보아도 불쾌해진다. 
징그러운 곤충을 봤을 때나 느끼는 강렬한 거부감이 올라올 뿐이다. 

드라켄헤임 한 켠에 나타난 「어비스」는 키무스 멕시아 각지에 나타난 것들보다 훨씬 작은 수준이다. 
인간을 살생하며 학습하기도 전에 우리 종족에게 토벌당해 피해가 최소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건.. ‘끝 없는 구멍’은 생명을 해할수록 넓어진다는 거겠지. 
라일에 있는 것이 가장 큰 규모일 것이다. 

영 믿음직스럽지 못했던 소환자들은 우리의 심장으로 만들어진 검을 들고 
천사를 하나, 또 하나 쓰러트려가고 있다. 
권능으로 천사를 없애려고 했을 때에는 재로 바스러지더니, 
검에 쓰러진 천사는 마치 살아있는 생물이었다는 듯 쓰러져 움직임을 멈춘다...   

시체가 되었던 천사는 다른 생물보다 더 빠르게, 
일주일 안에 부식되어 거뭇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져간다. 

천사와 싸우는 소환자들의 몸은 생각보다 쉽게 망가지고, 
또 생각보다 빠르게 복구된다. 
이 광경엔 익숙해졌다 생각했으나.. 영 기분이 좋지는 않군. 

전투에 권능을 응용하는 소환자들이 몇몇 엿보인다. 
그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든다. 
저들을 이제 ‘인간’ 이라 불러도 좋은가? 

천사의 비명은 이제 꽤 익숙하지만, 동시에 인간과 닮고, 닮아서 더욱 불쾌하다. 
꼭, 천년 전쟁 속 비명을 떠오르게 하는 듯... 

분명 우리의 심장으로 만든 검일진대, 
인간의 손에 쥐인 그것으로만 천사를 온전히 없앨 수 있다는 점이 기분을 묘하게 만든다.  

재가 되어버린 천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고 한다. 
우리가 힘을 빼 두면, 소환자들이 처리하는 것이 나을까. 
꼭 도구라도 된 듯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다. 

라 시르 곳곳에서 피비린내가 난다. 
천년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우리의 터전이 다시 피로 물들어 가는지. 
조금은 신을 원망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소환자」


저게, 천사 …? 하나도 성스럽지 않잖아! 오히려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오싹한데… 에일리언 같아! 
저게, 천사 …? 정말 명화에 그려진 것 같은 모습에, 기분이 묘해진다. 저 정도라면 천사라는 명칭도 어울리긴 하네... 
‘푹,’ 
등 뒤에서 무언가 관통하더니 간단하게 몸 앞까지 뚫려버린다. 
어, 잠깐.. 이거, 피야? 뭐야? 
뒤를 돌아보니 황금의 창을 꽂아넣은 날개 달린 석고상같은 「천사」가… ... 

‘끝 없는 구멍’이라고 불린다더니, 저 멀리서 보아도 말 그대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구멍처럼 보인다. 신에게 송곳이 있다면 그걸로 세계에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은 모습.. 이라고 해야할까. 
천사는 어떻게 세어야 하지? 몇 명?.. 마리? ...몇 개? 

저게 생명체이기는 한걸까? 잘 조각된 무언가가 
‘살생한다’는 목적만 가지고 움직일 뿐, 살아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드디어 보게 된 천사는.. 마물에게 쏘아졌던 살기나, 
드래곤에게 접했던 위압감과는 또 다른 느낌. 
분명히 겉모습은 아름다움, 인간이 추구하는 ‘미’에 가깝지만 
벌레에게서나 느꼈던 원초적인 거부감이 올라온다. 징그러워...  

천사는 검에 찔려 비명을 질러댔다. 
저 것도 고통이라는 걸 느끼는 걸까? 
피부는 대리석처럼 하얗지만 그 껍데기 아래에는 인간과 똑같이 붉은 피를 가지고 있었다. 
손을 적시는 게 내 피인지, 천사에게서 튄 피인지 알 수 없다… ...  

외형은 꼭 인간과 비슷하지만.. 전혀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던 「천사」가, 
죽어가면서는 울컥 피를 토하고 기묘한 소리로 흐느끼자 
사람이라도 죽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마구잡이로 공격해오는 「천사」에게 몇 번이고 신체가 뚫리고, 찢기고, 짓이겨진다. 
언제나 고통에는 익숙해지지 않지만.. 
그 무슨 짓을 당해도 멀쩡히 돌아오는 이 신체에는 적응이 되고 있다. 

일어서서 검을.. 쥐어야 하는데, 팔이… 어디 갔지? 
어, 잠깐만… ...





✺ 헨리 그레이필드와 사브리나 비젤이 증식하는 천사를 발견했다.
천사는 떼지어 마을을 습격한다.
이 피비린내는 천사의..? 사람의..? 아니면 나의...?



✺ 민가를 덮친 천사를 처리하기 위해 헬리오스가 모이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미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모양이다.
마을을 태우는 불꽃은 춤추고, 천사는 노래한다.


✺ 끝도 없이 증식하는 것 같던 5급 천사는 과반수 이상 제거되었다.
... ... 이제 더 불어나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SIDE CHAPTER

부화

 

 

 

✺ 자가분열하던 5급 천사는 끊임 없이 증식하다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더 이상 그 개체가 늘어나지 않았다.
헬리오스의 협동으로 천사는 정리되고 마을을 집어삼키듯 춤추던 불길은 안정되어간다.


 ...최초로 분열을 시작했던 한 마리의 천사는 조용히 마을을 빠져나간다.
드라켄헤임의 깊은 곳으로, 더 깊은 곳으로.

 

 

 

콥빠냐

 

✺ '끝 없는 구멍'에 다시 돌아가기 위해 그 몸을 숨기고 회복을 시작한다... ...
분열한 개체 모두의 전투 경험을 흡수하여, 더욱 단단해지고 있다.


이대로 돌아가면 자가 분열하는 1급 천사로 성장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헬리오스는, 세상은 ... ...

 

 

 

콥빠냐

 

✺ 예지 권능을 가진 슈르마에 의해 천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그 상태가...?


고치에서 튀어나온 무언가는 헬리오스를 무참히 공격하고,
눈치채지 못 한 사이 그 피부 아래로 스며들었다... ...

 

 

 

앙몬드

✺ 회복중이던 천사가 부화하여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천사는 1급 천사로 판별되었다.

나타난 천사는 모두... 2체.

 

저게 바로, 1급 천사... ...
경이로움을 넘어서 신성하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완전한 모습으로 나타난 천사의 크기는 3m를 조금 넘어보인다.
다른 천사보다 유난히 크지는 않지만, 앞에 있는 것만으로 보이지 않는 압력이 느껴진다... ...


푹,
천사가 들고 있던 창에 배를 관통당했다.
아프다고 느낄 사이도 없이 울컥 피가 쏟아진다.


권능에 저항력이 강한지,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보호 권능을 가볍게 부수고, 파괴 권능은 손짓 한 번에 꺼트려버린다.


....눈이.. 마주쳤나?
처음으로 압도적인 무력감을 느낀다.
당장이라도 한 줌 재가 되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


두 체의 1급 천사는 서로 소통을 하듯이 움직이는 것만 같다.
서로가 당하는 공격을 막아주고, 힘을 합쳤다가 다시 떨어져 공격해온다.
마치 둘이 합쳐 하나의 생물같다.
저런 게 만약 '끝 없는 구멍'으로 돌아가 완전히 회복해서 다시 나타났다면... ...


동료들이 지쳐가는 게 느껴진다.
...저건,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걸까?
명백히'죽인다'는 의미만을 갖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왜 그렇게 미워하는 거야?

 

✺ 한 체의 천사가 쓰러지자, 홀로 남은 천사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 완전한 모습의 천사 두 체는 모두 쓰러졌지만...

... 헬리오스의 피해가..

 

천사를 제거했지만,
헬리오스가 입은 피해는 매우 크다... ...


쌍생 천사와 함께 '끝 없는 구멍'하나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남은 하나의 구멍도 잔존 천사를 제거하면서 눈에 띄게 작아지고 있다.
천사의 존재로 구멍이 유지되었던 걸까?


끝 없는 구멍은 어째서 발생하는 걸까,
뚫린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


라 시르에서 하는 헬리오스 정기 회의에 모였다.
잔존 천사는 5급~4급으로 판명되었다.
동료들이 입은 피해는 크지만... 사망자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다.


사망자는 없지만... ...
라 시르 정기 회의에 익숙한 얼굴 몇이 보이지 않는다.
영구부상을 입은 자와, 몸은 회복되었지만 눈을 뜨지 못하는 푸른 머리의 작은 소환자... ...


소환자 사토 린은 1급 천사와의 전투 이후로 눈을 뜨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하게 아물어 있는데... ...
그 어떤 회복 마법도, 권능도 통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그게'... 1급 천사.
그런 게 더 있는 걸까? 얼마나 더...?
남은 구멍은 몇 개지?

 

✺ 잔존 천사를 제거하고 있다. 남은 하나의 끝 없는 구멍도 곧 소멸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 ... 모습이 달라진 누군가가 눈에 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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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가능성."

 

 

"네, 분발할게요…." 누군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아주 작게 들린다. 
이 목소리의 주인은…아마 분발이라는 단어를 잘 모를 것 같은데, 신기할걸.


한 드래곤과 소환자가 잡초를 뽑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거 참 신기하고 애매한 광경인걸…. 그래도 둘 다 웃고 있는 것 같다.

 


침을 흘리는 마물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주인을 잃은 건가..? 상당히 배가 고파 보인다. 
그러고 보니 검은 알의 안경을 끼고 있던 드래곤의 주변을 맴돌던 마물인 것 같은데....


어디에서 시선이 느껴지는데.. 당최 어디에서 오는 건지.. 
...... 천장에 거꾸로 서서 당신을 관찰하고 있었다. 잘못 보면 귀신으로 착각할지도. 
검은 안경알과 눈이 마주치자 뻔뻔하게 웃으며 손을 흔든다.

 


마드론이 커다란 천을 들고 다니며 소환자들에게 뭔가 써주길 부탁하고있다. 
이론 수업은 필요 없이 실전 훈련만 원한다면 자기에게 오라는 뜻에 맞게 고향의 언어로 써달라고 하는데.... 
'이론없는 실전 훈련 쌉가능' ...이건 누가 쓴걸까?


마드론이 뚫어져라 위아래로 흝어보는데 어쩐지 등골이 오싹해져 뒤로 물러나자 빙긋 웃고는 가버렸다. 
.....뭘한거지?

 


복도 한가운데, 누군가 노란색 땋은 머리를 채찍 마냥 휘두르고 있다. 
X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나... 
무시하고 지나가자.


어쩐지 주머니가 평소보다 가벼운 듯한 느낌이 든다. 
이상하다. 방에서 나올 때 빠트린 물건은 없는데... 
혹시...?

 


질척.... 라 시르 복도에 물자국이 곳곳에 남아있다. 
물치곤 색이 이상한데..청록색 물? 
누가 이런 걸 흘리고 다닌거지?


계약식으로 시끌벅적해진 라 시르 내부,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린다. 
"아까 봤어? 잠깐이었지만.. 정원의 풀숲이 하얀색으로 물들었던 거." 
"진짜? 눈이 올 시기도 아닌데..?"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청록빛의 땋은 머리카락을 따라가보니 웬 드래곤 하나가 누워있다. 
자고 있는 건지, 늘 눈을 감고 있어서 알 수는 없지만.. 
왜 하필 밟기 쉬운 지나가는 복도에서 저러고 있는 거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높은 확률로 귀찮아서 드러누운 것 같다.


라 시르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맘껏 관람하고 있는 청록색의 드래곤과 염소를 닮은 마물 둘. 
뒷모습이 묘하게 닮아보이는 건 착각일까?

 


" 어머, 무슨 일이야? " 
얼굴에 주근깨가 박힌 한 소환자가 불안해 보이는 다른 소환자에게 다가가 연유를 물어본다. 
사람 좋은 웃음 그에 딱 알맞은 말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비어 보인다.


어느 창가에 사브리나 비젤이 잠들어있다. 
자잘한 소리들로 숙면에는 좋지 않을 거 같은데, 
화려한 마물이 그 주변을 헤엄치다 나를 바라본다. 
깨우지 말라는 걸까?

 


이시스가 따사로운 햇볕을 맞으며 푸른 잔디밭에 서있다. 
자신의 권능을 다루는 중인지, 그림자가 땅에서 솟아오를 듯 구물대고 있다.


여유롭게 산책을 하던 중에 급하게 지나가던 이시스와 부딪쳤다. 
평소의 여유로운 미소는 온데간데 없고, 다소 차갑게 식은 시선이 뺨에 와닿는다. 
식은 땀을 흘리는 것 같은데, 괜찮은걸까?

 


왜 이렇게 주변이 소란스럽지? 
"저기 봐.. 저 사람 또 저러고 있어.." 
"왜 저러는 거야.." 
멜라스가 마물에게 먹히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아무도 안 도와줘?!


"내가 어떻게 하면 돼..?" 
한 남자가 안절부절하고 있다. 그의 앞에는.. 
로또..? 어쩐지 화나 보인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로또 잘못은 아닌 것 같다.

 


요즘 들어 도서관이며, 수련장이며 죽치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잠은 자는건지, 염려스럽지만 그 집중력이 대단하다더라. 
그 레이피어를.. 쓰는 회색머리 여인이라지? 
전략이며 검술 실력이며 나날히 향상해간다는 소문이 꽤 자자해 다들 예의주시한다더군.


다이아나? 가끔 부엌 쪽에 기웃거린다던데.. 
그가 만든 디저트류들이 아주 기가 막히다더라! 
한번 맛 본 사람들은, 단골이 되는 걸 보니 좀 궁금하네. 
한번 가서 부탁이라도 해볼까?

 


드라켄헤임의 라 시르 복도, 아나톨리오가 볕이 잘 드는 창가에 걸터앉아있다. 
아무래도 책을 읽다가 살짝 잠든 모양인데.. 
무슨 책인지 궁금해졌지만, 조용히 지나가야겠다.


.....이 장갑 누구거지. 
흰 장갑이 떨어져 있다. 손이 큰 편인 거 같은데... 
일부러 버린 게 아니라면 주인을 찾아줘야 할까? 
근처에서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리는것 같다.

 


고슴도치처럼 생긴 마물이 난데없이 머리 위로 올라타다 마음에 들지 않은 지 
뛰어내리곤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본 뒤 가버린다. 
그러고 보니 유독 누군가의 머리 위에 자주 있었던 녀석 아닌가? 


갈색 머리의 남자아이가 누군가와 함께 얘기하고 있던 중에 이쪽으로 시선이 마주쳤다. 
어색하게나마 손인사를 해주자 활짝 웃고는 똑같이 손을 흔들어준다.


상냥한 빙룡의 얼어붙은 성 꼭대기에는 
아무도 들이지 않는, 자수정 문의 방이 존재한다고 한다. 
당부를 잊고 들어가려 한 손님에겐 엄청나게 화를 냈다고 하던데... 
그곳엔 무엇이 잠들어있는 걸까?


눈을 마주친 칼릭스가 반갑게 웃으며 빙수를 건네온다... 
그런데 이 빙수, 얼음 외엔 아무 고명도 없잖아? 
심지어 그릇도 스푼도 전부 얼음이었다...차가워!

 


드라켄헤임, 라 시르 성 근처를 유유히 걸어다니는 카이토가 보인다. 
시선을 마주치자 품 속에서 카드를 꺼내는데.. 응? 갑자기 두 개가 되었잖아? 
눈을 깜빡한 순간 양 손 가득 늘어난다. 어떻게 한 거야!


아무리 봐도 독버섯으로 보이는 무지개빛의 버섯이 보인다. 
그걸 따서 한 번 냄새를 맡더니 간식처럼 입에 넣는 소환자는.. 자칭타칭 마술사가 아닌가. 
저 몸이 되었다고 아무거나 줏어먹고 다니나본데, 넉살이 좋은 건지 뭔지... 
"이거 맛있는데 먹을래?" 
권해오기까지 한다. 어떻게 할까..

 


사람이 지나지 않는 한적한 복도에 웬일로 선객이 있는 모양이다. 
“…너는 그것조차 완벽할지도 모르겠구나.” 항상 존대를 쓰던 안경을 쓴 소환자와 … 그 옆은 이름이 레오였나? 
 싸움 구경은 언제나 흥미진진하다. 
 


매일 자정, 라 시르의 오래된 도서관에 유령이 나온다는 괴담이 돌고 있다. 
찾아가 보니 과연, 안경을 쓰고 무서운 얼굴로 온갖 책을 뒤지고 다니는… 
“귀하가 이 시간 도서관에? 별일이군요.” …어쩐지 익숙한 사람 같은데.

 


조용한 복도를 거닐던 순백색 머리의 청년, 형제인 에녹을 보고서도 그냥 지나친다. 
별로 친하지 않은 건가..? 뭐 형제라고 꼭 사이가 좋은 법은 아닐 테니까.


잔잔한 호수를 거울삼아 레오가 머리 스타일과 옷매무새를 단정한다.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늘 용모를 깔끔하게 하는 것 같다. 
당신을 발견하더니 웃으며 인사한다.

 


저녁이 되면 그 신부는 매일 같은 시각 라 시르의 어느 방 안에 틀어박힌다. 
문에 귀를 갖다대면, 희생자들의 안식을 빌며 헬리오스의 단원들 한 명 한 명을 축복하는 기도가 들린다.


"신부님은 왜 머리를 길렀어요?" 
누군가 묻자 신부가 웃으며 대답한다. 
"짧은 머리로만 살다 보면 머리가 긴 사람들의 삶을 알기 어렵더라고요."

 


키온이 엄청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마물에게 먹이를 주고 있다. 무슨일이지? 
아아..!성장 했구나. 조그만 말소리로 이제는 닮지 않아서 다행이야..라고 속삭이는 걸 들었다. 
누구를 말하는 걸까?


《 매일 오후 4시에는 키온의 레어로 향하는 작은 여우가 있습니다. 
여우가 50개의 환형 계단을 밟고 사라져도 당황하지 마시고 49개의 계단만 올라가주세요. 
계단은 총 49개이며, 50번째는 없습니다. 
따라 올라가서 생기는 불상사에 대해 일절 책임지지 않습니다. 》 
...라는 표지판을 봐버렸다. 이거 누가 쓴거야?

 


황성을 돌아다니다보면 꼭 검은 단발머리 여자애가 보인다. 
아직도 이 세계가 신기한 건지 계속 쏘다니는 모양이다.


가끔 어디선가 "김치...김치가 너무 먹고 싶어." 
하고 중얼 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앵초가 보인다. 
김치가 대체 뭐길래?

 


복도에 거대한 꽃다발을 든 머쓱하게 웃고있는 청년이 보인다. 
오늘은 울지 않는것 같네...


라오진은 잔디에 앉아서 칼을 닦고 있는 것 같다. 
저런... 칼에 손이 베인 것 같은데.... 저런 일로는 이제 울지 않나보네.

 


라 시르 테라스에서 한쪽 눈이 새파란 은발의 드래곤을 보았다. 
눈을 마주치니 가볍게 인사하고는 자연스러운 주제를 꺼내 대화를 시작한다. 
대화는 생각보다 편하게 흘러가는데, …묘한 거리감이 느껴지는건 착각일까?


라 시르 내에 마련된 대련 장으로 가니 에이브라함이 대련 상대를 부탁했다. 
그는 특히 무예에 능하다 들었다.

 


성 뒷뜰, 꽃이 잔뜩 핀 화단 곁에 풀들이 자라나 있다. 
꽤 공들여 키운 흔적을 보면... 잡초가 아닌가?


라 시르 근처에서 길을 헤매다 도착한 어느 공터. 
단단한 암벽이 아이스크림 스쿱으로 파낸 듯 커다랗게 패여 있어, 원래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다. ...이런 권능을 쓰는 드래곤이 있던가?

 


슈르마가 또 길바닥에 퍼져 잠들어 있다. 왜 이런 데서 자는 거지? 
깨워도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이는데…. 장난이라도 쳐볼까?


누군가 햇빛이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소환자들을 바라보고 있다. 
가만, 눈을 감고 있는데 제대로 보고 있는 게 맞나? 자는 거 아냐?

 


오전 6시, 에일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다음날 오전 6시, 에일이 아침 운동을 하고 있다. 
다음다음 날 오전 6시... ... 오늘도?


맛있는 냄새가 난다. 홀린 듯 따라 걷다 보니... 
에일과 실베르시아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나 보다. 
슬쩍 한 입 달라고 해봐도 되는 걸까….

 


쿵, 쿵!  지진인가? 
했더니 저 멀리서 헤이즐의 골렘이 걸어오고 있다. 좀 살살 걷지, 저건 층간소음이다. 
그나저나 품에 먹을 게 가득한 걸 보니 주인님을 위해 음식을 조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강탈할까? 저 순수한 동그란 눈을 보니 왠지 맞짱 떠도 충분히 이길 것 같다...


여기저기 이상한 돌들이 굴러다닌다.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은데 착각인가? 
게다가, 혼자 있으면 수가 더 늘어난다. 이상한 짓은 안 하겠지...?

 


석상 같은 것이 우뚝 솟아있어 다가가 보니… 
일광욕을 하고 있는 클레타였다. 
이 녀석… 선 채로 자는 건가?


클레타가 뭔가를 잔뜩 품에 안고 지나가는 걸 발견했다. 
레어라도 꾸밀 셈인가? …실수로 떨어트린 물건을 주워 보니 
「예일 디저트 100선」이라는 책이었다.

 


실베르시아가 언제나처럼 햇볕을 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작고 까만 알을 노려보고 있다.


2우연히 마주친 실베르시아가 이것저것 캐묻고 갔다. 
요새 훈련에 열중한 듯하더니... 어디서 들었는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한다.

 


푸른 불꽃을 가진 마물이 작은 인간의 몸을 캣타워마냥 사용하고 있다. 
...설마 마물 이름이 뽀뽀야?


유 라가 별빛이 쏟아져내리는 밤하늘을 보며 서있다. 
'잠이 오지 않아서요.' 하며 어색하게 웃었지만, 눈가가 좀 붉어보이던데...

 


"저 사람이 그 소문의 주인공인가?" 
"끝장나는 밤을 보냈다는..." 
"아니라니까요!" 
소문이 와전된 듯 보이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가끔 인상을 쓰고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다. 
그.. 전에 경찰이라고 했던가? 
요새 부쩍 화가 많아졌다고 하던데...

 


라 시르 내부에서 큰 소리가 나 가봤더니 
아무래도 페니와 쿠퍼가 무언가 부순 모양인데, 
당신을 보더니 어깨를 으쓱이며 마치 둘이 한 일이 아닌 것처럼 가버린다. 
부순 거 치우지도 않는 거야?


부스스한 머리카락과 닮은 마물을 머리에 두고 페니가 부엌에 어슬렁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배고픈 모양이다. 
그런데.. 밥 먹은 지 얼마 안 되지 않았나?

 


이따금 나타나는 높은 바위 언덕 위에 올라가면 
「라 시르」주변의 웬만한 전망은 다 볼 수 있다고 한다. 
음, 멋진 풍경인걸! 하지만 어째서인지 발 밑이 조금씩 흔들린다. 
중심을 잘 잡아야겠어.


어디선가 엄청나게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이건… 소환자의 고함 소리? 
돌 파편이 여기까지 튄 걸 보니 그 붉은 머리의 미친 드래곤이 틀림없다. 
들키기 전에 조용히 돌아가자!

 


카스카다가 나무 위를 보면서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있다. 
나무위에는.... 마물이 한마리 보이는데... 
“팬케잌! 후드에 뛰어내릴 생각 하지 마십시오! 이제 거기 안 들어 간다고요!”


어디선가 날아온 검이 카스카다의 손에 쥐어진다. 
그의 손에 검이라니....어울리지 않는데, 정말 휘두를 생각인걸까?

 


"컺 암쏘 인투 유~인투 유~인투 유~" 인적 없는 복도에서 노랫소리가 울려퍼진다. 
금세 다른 노래의 후렴으로 바뀌며 메들리처럼 이어진다. 
"어?! 아리아나 그란데?!" 
뒤쪽에서 노래의 정체를 알아차린듯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자 
노래를 부르던 사람은 혼비백산 달아났다... 뭐지?


한 소환자가 널찍한 공터에 거대당근을 쌓아놨다는 소문이 들려온다. 
궁금해서 가봤더니... 진짜잖아?! 거대한 검 두개를 양손에 들고 당근을 우다다 썰어댄다. 
저 칼.... 식칼처럼 생겼네.

 


검고 하얀 헤츨링 2마리가 자신의 마물을 보며 침을 흘리며 노리고 있는 것 같다.. 
아차..! 그리고보니 저 헤츨링들은 보석에 눈에 봬는 게 없댔나? 
마물의 보석 때문인가보다..!! 어서 도망가는게 낫겠어.


다들 자고있을 새벽아침. 어디선가 맛있는 냄새가 난다. 
주방을 지나가보니 렌이 아침밥을 준비하고있는 모양이다. 
한입만 달라고 해볼까..?

 

 

연둣빛 머리카락의 드래곤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술을 건네 온다. 
독주니까 조심해서 마시라는데 그만큼 독한 술이라는 건지 독이 든 술이라는건지... 
표정을 보니 확실하게 말해줄 생각은 없어 보인다.


마물 하나가 홀로 이 주변을 서성거리고 있다. 
아무래도 라인이 또 내버려 두고 가버린 듯한데 저렇게 방치해도 되는거야?!

 


"어라? 저 외형과 뿔은…. 분명 어디서 봤는데…?" 
계약을 몰래 지켜보던 한 용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아, 맞아! 고대의 서적에서 봤었지. 신기하네… 그럼 저 용은 1600년이 넘게 살았던 건가?" 
…이게 무슨 소리지? 
우리 중에 그렇게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이 있다고?


"드래곤님, 오랜만이에요." 
오래전부터 아는 사이였는지, 반짝이는 요정들이 한 드래곤을 에워싸고 안부를 묻는다. 
가까이 다가가 살짝 엿들어보니… 
……불사의 권능? 영생? 이게 무슨 소리지…?

 


수련장에서 대검을 휘두르는 양갈래의 소환자가 자주 보인다고 하던데, 
본인의 키만한 검을 한손으로 휙휙 잘도 휘두른다고 한다. 
그리고 놓치기도 잘 놓친다고...


멀리서 로즈메리가 뭔가에 쩔쩔매고 있는 듯한데, 무슨 일이지? 
작은 생물체에게 계속해서 물리는 듯한.. 
...지금 자신의 마물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는 건가?

 


리치는 드라켄헤임에 들어온 이후부터 매우 들떠 보인다. 
레어에 좋은 것을 숨겨놓은 걸까? 
평소보다 더욱 말랑말랑해 보여서 무슨 부탁이라도 들어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커다란 푸른빛 드래곤이 날아오더니 사람의 형체로 변했다. 
허공에 깃털이 너풀너풀 날리더니... 에게? 
에취! 하고 재채기를 하기 시작한다.

 


소담이가 이즈에게 검을 휘두르는 자세를 알려주고 있다. 
눈을 반짝이는 그녀와 달리 이즈는 같은 자세를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게 적잖이 힘들어 보인다. 
마음 속으로 응원해 주자.


"여기는 살펴봐도 되나요?" 소담이가 호기심을 가지고 라 시르 내부를 열심히 돌아다닌다. 
처음 왔을 때에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제는 관계자가 되었다는 마음가짐(?) 때문인지 
여기저기를 들쑤시는 발걸음이 훨씬 적극적으로 변했다.

 


유난히 이른 아침마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보인다. 
잠깐..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 피.." 
"..... 피...!" 
".... 커피....." 
그냥 단순한 카페인 중독자였다, 이름이 이즈..라고 했던가...


왁스도 따로 없을 텐데 머리 스타일이 늘 깔끔하게 뒤로 넘긴 헤어스타일이라 궁금해서 물어보았더니. 
드라켄헤임의 줄기가 굵은 풀을 잘라 쭉 짜내서 나온 끈끈한 액체로 머리를 고정한다고 한다. 
..어쩐지... 풀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저 멀리서 보니 헨리에게 참을 내주는 바이스가 보인다. 
뭔가 모양을 보니 고기 스튜인 것 같다. 
배가 고프네.


과거에 호수였거나 바다와 연결된 수로였는지, 
바이스의 레어 냇가에서 종종 소라껍질이 발견되곤 한다. 
귀를 기울이면 청하하고 맑은 파도소리가 들려오지만, 
드물게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이 있다고한다.

 


한 소환자의 곱슬거리는 긴 머리칼이 자꾸만 색을 달리하는 모양이다. 
붉었다가, 희었다가, 푸르러지거나, 다양한 색을 한번에 갖기도-. 
재미있어 보이긴 한다. 스스로에게 질릴 틈은 없을지도 ...


깊은 밤이 되면,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 소리가 들려 온다. 
어떤 날은 전설이기도, 어떤 날은 동화이기도 하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오늘은 재밌는 꿈을 꿀 것 같기도...

 


하늘에 구름 한 점 끼지 않은 맑은 밤이 오면, 
종종 폭포 근처에서 터져나오는 알록달록한 불꽃들이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는 다는데... 
작은 축제라도 벌이는 걸까?


"왁-!!!" 
장난꾸러기 드래곤이 오늘도 사람, 드래곤, 마물 할 것 없이 놀래키기에 열중인 듯 하다. 
지금 붙잡힌다면 날이 저물때까지 숨바꼭질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 할테니 
들키지 않게 돌아가야겠... 이런, 눈이 마주쳤다!

 


망할 거다. 실패할걸? 겨우 네가? 
만나는 이들마다 온갖 악담을 퍼붓고 다니던 최고령 드래곤이 
갑자기 피곤하다며 조용해져선 구석에서 눈을 감고 있다. 
상당히 기복이 심하군…….


머리가 엄청 긴 드래곤…. 어엇, 이쪽으로 온다! 
…… 오늘 저녁에 갑자기 죽을 예감이 든다며 해산물을 구해오란 부탁 아닌 부탁을 받았다. 
지금요? 갑자기요? 여기서요?!

 


새벽, 황성 정원을 조깅하고 있는 에단이 보인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하게 하는 것 같다. 
아는 사람을 만났는지 운동을 멈추고 누군가와 대화를 하고 있다.


황성 정원을 걷던 중 에단이 누군가를 쫓아가고 있다. 
"사고 치지 마십쇼!" 줄리엣이 또 사고를 쳐서 검거(?) 하려는 것 같다. 
황성 내부에서는 이들의 추격전이 종종 보여 익숙해 보인다.

 


"나이가 들어 보이던 외모의 드래곤 말이야. 
젖었을 때 앞머리가 쳐졌던 걸 보면 원래 삐쳐 올라간 형태는 아닌 듯한데.... 
매일 아침 일일이 세팅하는 걸까." 

항상 안경 너머로 능청스러운 웃음의 노인 페이스인데, 
이른 아침에 만나기만 하면 퀭하고 표정이 썩어가는 것이....아침 잠에 있어 저기압인가보다. 
되도록 그가 제대로 잠 깬 뒤 만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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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함보다 중요한 무언가."

 

✺ ... 용은 이미 약속의 언어를 알고 있다.

 

색색깔의 미미르가 소환자와 용 사이를 너울너울 날아다니고 있다.
날개 색이 같은 한 쌍이, 상성이 잘 맞을 것 같은 두 사람을 찾는 비결은 뭘까?

 

미미르의 날개에서는 날개의 색을 담은 빛이 가루처럼 부수어 떨어져 사라진다.
손으로 빛의 가루를 잡으려고 해보아도 눈처럼 녹듯이 사라질 뿐이다.

 

계약을 하기 위한 마법진은 라 시르 중앙홀 바닥에 새겨져있다.
누군가 계약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것은 예의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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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영역

드라켄헤임

 

천년전쟁 이후 인간의 접근이 금지된 용의 영역. 
드래곤의 생활 영역을 드나드는 인간이 있다면, 분명 어느 용의 반려자일 것이다.

드래곤을 품는 만큼 대륙의 반을 차지할 정도로 광활한 넓이를 지녔다.

지평선까지 펼쳐진 원시림에는 거대한 나무와 풀이 자라고, 바다처럼 넓은 호수가 분포하며, 인간에겐 생소하기 그지 없을 품종의 동·식물. 그리고 마물이 서식한다. 그럼에도 인간의 눈에 익은 것이 보인다면, 그는 분명 천년전쟁 전 용과 인간이 함께 사용하던 건물일 것이다.

 

리무스 열매
섭취하면 모발과 눈 색이 변경되는 과일. 작은 나무에 열리는 이 식물은 드라켄헤임 깊숙한 숲이나 동굴에만 서식한다. 100년에 한 번씩만 열매가 열리므로, 구하기 까다롭다. 여행을 나가는 드래곤이 성흔을 감춘 직후 섭취하면 염색이 오래 유지될 수도 있다. 다양한 색깔의 열매가 열리는데, 열매의 표피에 따라 염색되는 색깔이 다르다. 겉모양은 엄지손가락만한 복숭아 형태. 맛은 개체별로 천차만별이다.

님프, 살로메
드라켄헤임의 깊은 곳에서 종종 발견되는 숲의 요정 님프. 숲을 풍요롭게 해주는 온화한 요정이다. 보통은 하얀 빛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몇 백년에 한 번, 불길한 기운이 느껴지는 검은 빛으로 나타날 때가 있다.
이 때에 자극을 주면 거대하고 포악한 마물 살로메로 변하는데, 요정 상태였던 님프와 달리 온갖 부정을 담고 있는 살로메는 섬유질과 단백질을 녹이는 강한 산성을 띄고 여러 개의 핵을 가지고 있어 처치하기 까다로우므로 접촉하지 않는 것이 좋다. 드래곤 사이에서는 검은 님프를 발견하면 건드리지 않는 암묵적인 룰이 있다.
아직 님프가 살로메로 변하는 원인이나, 그로 인한 파장 등은 연구되지 않아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중... 검은 님프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것이 300년 전이기때문에 그를 잊고 있던 드래곤도 많을 것이다.

검은 님프

 

살로메

 

 

비누풀
드라켄헤임의 물가에서 종종 발견되는 풀. 부드러운 잎사귀는 물을 묻혀 문지르면 쉽게 바스라지고 녹으면서 거품이 난다. 향긋한 풀 냄새가 나면서 몸의 유분기를 제거해주고, 지저분하게 묻은 것을 깨끗하게 해준다. 거품은 물에 닿으면 시간이 지나 자연스럽게 사라져 날아가므로 물이 더러워지지 않는다.

비누풀

망야천
드라켄헤임의 깊숙한 곳에 있는 온천. 드래곤들이 종종 피로를 풀고 가는 명소이다. 대형 오아시스처럼 넓은 이 곳은 에메랄드 빛의 따뜻한 온수가 흐르고, 물에서 미약한 빛이 나와 밤에도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준다. 근처에는 드라켄헤임에서도 흔하지 않은 모랭 열매가 잔뜩 열린 나무가 있다.

 

신비한 마물의 알
드라켄헤임에서 극히 드물게 발견되고 있는 신비한 알. 태어나는 알은 대부분 온순하고, 여타 마물보다 지능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아주 특이하게도, <끝 없는 구멍>의 발생을 억제시키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잘 키운다면 천사에 대한 타개책으로 유용할 지도 모르겠다만... 아직까지 어떤 마물에서 태어나는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 지는 밝혀지지 않은 수수께끼의 마물이다.
현재까지 밝혀진 것은 알은 검은 알, 흰 알 두 종. 태어나는 마물은 10종까지 보고되었다.

 

 

 

라 시르

드라켄헤임 깊숙 한 곳, 중앙에 있는 거대한 백색의 성. 1000년보다 더 전 인간과 친밀한 관계였을 때 예일의 황성과 똑같이 생긴 쌍둥이 성을 지어뒀는데 그게 바로 《라 시르》이다. 인간의 황성과 똑같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 크기는 드래곤에게 맞추어져 훨씬 거대하다. 주로 동족들의 전체 회의 장소로 사용되지만, 심심한 드래곤들이 모여 차와 다과를 나누거나 여행에 돌아온 드래곤이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등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친목 장소로도 이용된다.

 

 

외곽 지역

인간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곤 하지만, 외곽엔 작은 마을이 몇 군데 남아 있다. 

'영역을 더 넓히지 않는다면' 을 조건으로 암묵적 허용이 되어 있는데, 다행스럽게도 깊이 들어가면 들어갈 수록 강한 마물이 나오기에 인간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마을 사람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드래곤의 마음을 돌이킬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

대신, 심심한 드래곤이 가끔 장난을 치러 마을에 나타나기도 한다는데…?

 

"등을 마주댈 자."

 

 

3.2
✺  광활한 원시림이 끝 없이 펼쳐져있다. 이곳이.. 드라켄헤임.

거대한 원시림이 펼쳐져 있다.
건물보다 높은 나무는 하늘을 가리고, 분명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숲은 한 밤처럼 어둡다.
바닥에 깔린 빛나는 이끼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마치 대륙을 반으로 갈라 놓은 것처럼 거대한 구멍 안으로 바다같은 물이 쏟아지고 있다.
이게 드라켄헤임의 폭포. 인간의 세계와는 그 규모가 다르다.


드라켄헤임에서 거대한 것은 식물만이 아니다.
집채만한 네 발 달린 짐승이 사람만한 크기의 과일을 따 먹고 있다.


드라켄헤임에 거대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의 세계에서도 흔히 볼법한 동식물 역시 서식한다.

절벽 사이를 가로지르는 계곡에 물고기가 떼지어 이동한다.
작은 물고기 떼를 뒤 이어 포식자로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가 뒤 따라가더니,
그 뒤를 또 다시 고래처럼 거대한 무언가가 따라가 집어삼킨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온천이다.
살짝 에메랄드 빛을 띄고 있는 물은 적당한 온도로 피로를 회복하기에 좋을 것 같다.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꽃밭이다.
...아니, 꽃? 이라기에는 그 중앙에 박혀서 빛나는 것은 마치 보석같은 무언가.
바람이 불어올 때 일제히 풍경 소리가 울린다.


주변을 돌아다닐 때, 생각해 보니 어떠한 알을 보았던 것도 같다.
… 알? 무슨 알이지? 기억은 묘하게 희미하다. 어디에서 스쳐 지나갔더라?


하늘마저 인간의 땅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기분 탓일까?
낮의 푸른 하늘도, 오후의 노을짐도, 밤의 별빛도 유독 선명하게 보인다.
저 너머로 깊고도 어두워, 그 끝을 알 수 없는 구멍이 보인다.


… 한 눈에 보아도, 주변의 풍경과는 퍽 이질적인 느낌이다.
어쨌건 지금은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겠지.


여러 가지 자연의 소리가 어우러진 채 들려 온다.
그 소리는 평화롭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어쩌면 인간의 음악은, 태초의 자연을 따라가려는 시도였을지도...


거대한 호수는 기이할만치 물이 맑아 아래가 훤히 비춰 보인다.
물은 몹시 시원해서, 여과 없이 식수로 사용하기 딱 알맞다.


나무 열매들이 구석진 곳에 한가득 모여 있다.
근처에 서식하는 동물들의 보금자리일까.


드래곤의 날개가 하늘을 가로지르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사라진다.
인간의 땅에선 드문 소리이지만, 이 곳에서만큼은 흔할 것이다.


뭔가 선명한 냄새가… 이크! 동물의 배설물이 주변에 있는 듯 하다.
발끝을 잘 보고 돌아 다니는 게 좋겠는걸 ...

 

「드래곤」

저 멀리 소환자가 어설픈 폼으로 짐승에게 칼을 겨누고 있다.
직접 피를 본 적이 없나?
어설픈 수준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는 것 자체를 망설이고 있다.


영 믿음직스럽지 못한 소환자가 눈에 띈다.
곧 죽을 것 같이 비실대면서도, 꿋꿋하게 살아 움직인다.


생각보다 쓸만 할지도.. 라는 생각이 스친다.
얼마간 지켜보다가, 슬슬 가르침을 줘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켜본 바에 의하면 저들의 재생력은 가히 「불사」라고 불러도 좋을 수준이다.
저 정도의 회복이 가능하다면, 가히 신의 영역이 아닌가.


레어 근처로 지나가는 소환자가 보인다.
이 곳은 드래곤의 영역이라 마물 따위는 없거늘,
그런 것도 모르는 채 작은 인간은 조심스럽게 주위를 살핀다.


조심성이라곤 조금도 없는 소환자도 있는 모양이다.
모든 것에 주의할 필욘 없겠다만, 꼭 물가에 내놓은 아이 같군.


그들에게 이 광경은 신기하기 그지없는 모양이다.
그야 그렇겠지. 그토록 긴 시간을 온전히 담아낸 풍경이니.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인간의 땅과는 다를 것이다.


풀이며 나무, 생선이나 동물을 보며 이리저리 탐구하는
소환자가 보인다. 눈이 반짝이는 게, 꼭 해츨링을 닮았군.


스스로의 재생력을 시험하고픈 자가 있는 모양이다.
도와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만, 하던 중 회복이 듣지 않으면 살인자가 되는 건가?


그 지긋지긋한 열병을 이기고 와서일까, 본인들의 방식대로
휴식을 취하는 동족들이 많이 보인다. 역시 휴식은 고향이 최고이겠지...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소환자들과 계약해야 할 것이다.
누구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까. 꽤 고민되는 일이로군…


드라켄헤임 내를 이리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인간이 있다는 것은
긴 역사 내에 아마도 처음일 테지. 자연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아마 지금쯤 쉴 새 없이 수다를 떠느라 소란스러웠을 테다.


‘인간의 시신을 치울 일은 없겠지?’ 누군가 지나가듯 말을 건다.
그들의 신체는 거의 불사이니, … 아니, 죽을 수도 있기는 한가?


소환자가 엉엉 우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어딘가 다친 모양이로군.
얼마 지나지 않아 곧 회복하겠지만.. 고통은 경감되지 않는 듯 하다.


간만에 자리잡은 레어는 안락하기 그지 없다.
이참에 친한 동족들의 레어를 순회해도 나쁘지 않겠지.

 

「소환자」

바다… 아니, 물 맛을 보면 이것은 호수다.
단지 너무 거대해서 바다처럼 보이는 것 뿐… ... 
물이 어찌나 맑은지 겨우 발목만 담가보려고 했을 뿐인데 순식간에 허리까지 빠진다.
저 가운데는 얼마나 깊은 수심일까?


무지개빛으로 오묘하게 빛나는,
아무리 봐도 독이 있어보이는 종류의 버섯이다.
하지만 ‘이 신체’라면 그 어느 독도 통하지 않을 것이다.


머리가 세모낳고 송곳니가 긴 뱀이 튀어나와 다리를 물었다.
절대 독사겠지. 분명 독사일거야.
죽는걸까? ...라고 생각했지만, 30분쯤 열이 나나 싶더니 멀쩡해진다.


드래곤의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이 옷은 적당한 온도를 유지해준다.
운동량이 많아지면 조금 더워지지만, 밤에는 춥지 않고 아늑하다.
아무리 험하게 굴러도 해지지 않는다.


새콤하고 시원한 향이 나는 풀을 발견했다.
입에 넣고 씹어보니, 묘하게 껌같은 질감으로 변하고 입 안이 깔끔하게 상쾌해진다.


우선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충분한 영양분이 되는 식량, 물, 그리고 안전한 잠자리가 기본.
조건에 맞는 유리한 위치를 찾는 것이 관건이다.


넓은 땅덩어리라더니, 아직까지 나 이외의 사람을 마주친 적은 한 번도 없다.
다들 혼자서 이렇게 헤매고 있을까?


하얗고 거대한 건물을 발견했다. 
아주 오래되었는지 나무와 덩굴이 잔뜩 얽혀있고, 사람의 흔적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지만..
분명히 문명이 존재했던 흔적. 판타지 게임 속에나 나올 법한 배경. 여길 털어보면 보물 상자에서 포션이라도 줄까?


거대한 것은 식물이나 털 달린 짐승 뿐만이 아니었다… ...
사람보다 거대한 지네라니! 표피에는 부숭부숭한 털이 나 있고,
집게는 위협적이다. 게임 속 몬스터와는 차원이 다른 박력이잖아!
무엇보다, 징그러워!!!


주변이 점점 어두워진다 싶더니, 어느 새 완전한 밀림속이다.
어째서인지 바닥에는 끈적하고 하얀 실같은 것이 잔뜩 펼쳐져있고..
마치… 거대한 거미줄같은 … ...


이 허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먹어야 한다.
고기.. 고기가 먹고 싶다… 하지만, 그러려면… ...


전과는 다르게 몸이 가뿐하다.
가뿐한 수준이 아니라, 마음만 먹으면 점프 한 번으로 저 거대한 나무 위로 오를 수 있을 정도.
움직임은 굉장히 빠르고, 힘은 어마어마하게 세져서,
마치 억지로 꾹 눌려있는 스프링같은 기분이다.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가 말 그대로 ‘하늘로 튀어올랐다.’
떨어질 때 중심을 잡지 못하고 바닥에 내리꽂혔다가, 우득. 뼈가 부러졌다.
재생력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울음이 터질 수 밖에 없는 고통이었다.


힘을 잘 못 쓰면 그대로 근육이 파열되고 뼈가 으스러지고 만다.
회복이 될 때 까지는 아파서 꼼짝도 할 수 없다.
..조금만 더 부드럽게 사용하지 않으면… ... 


몇 번째로 몸이 망가지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몇 번째 멀쩡히 돌아오는지도..
차라리 고통이라도 느끼지 않는 기능을 추가해주던가.
무릎만 까져도 아픈 것은 그대로이다..
...기분탓일까? 한 번 망가질 때마다 이 몸에 익숙해진다.

 


3.7
✺  한밤중임에도 나무가 소란스럽게 지저귀고 있다.. 거친 바람이 분다. 

소환자, 헨리 그레이필드가 처음 보는 기이한 마물을 발견하다.

드라켄헤임 생존 50일차.
처음 보는 기이한 마물을 발견했다!
(전투 로그 1컷)
✺ 수행 시 사이드 챕터 발생

 

 

 

앙몬드

✺  저 거대한 마물은 드라켄헤임의 높은 원시림도 뚫고 우뚝 솓아있다.

점액질의 마물은 불투명해서 내부가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하물며 지금은 밤. 그 안에서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핵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다.

 

점액질의 거대한 마물 안에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무언가가 보인다. 
저걸 처리하면.. 이 마물의 움직임이 멈출 지도 모르지만... 너무 빠르다.

 

마물의 핵이 눈에 들어와 가까이 다가갔다가, 
코트를 제외한 옷의 반 이상이 녹아버리고 말았다.

 

마물의 가까이에 다가가 공격하려다가, 산성의 점액질을 맞고 피부와 옷이 녹아내렸다. 
피부가 타는 것 같이 뜨겁다. 불쾌한 냄새가 난다. 
녹아내렸던 피부는 뼈를 드러내게 했지만 인간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의 속도록 재생되었다.

 

마물의 가까이에 다가가 공격하려다가, 산성의 점액질을 맞고 코트를 제외한 옷이 녹아내렸다. 
'저것'은 드래곤에게 아주 위협적이진 않지만, 건드리면 성가신 일이 생겨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암묵적인 룰일텐데... 소환자인가?

 

물컹한 체내 안에서 재빠르게 이동하는 핵을 발견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에 성공했다. 
남은 핵은 몇 개지? 10개를 전부 제거하지 않으면 이 마물은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3.8
✺  이 곳은 망야천.

 


3.9
✺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망야천에 모였던 이들이 파하고 있습니다.

 

✺ 공중에 날아오른 아테바인이 권능을 행합니다.
그의 손길로 어루만져진 대지의 상처가 씻은 듯이 사라집니다.

 

✺ 일그러졌던 지형이 돌아오고, 깊게 패인 대지의 상처가 아뭅니다.
그러나 이미 생명을 잃은 나무와 풀, 꽃은 돌아오지 않는군요.

그렇지만... 저길 보세요.
바이스 폰 슈타인의 레어가 복구되었습니다.

 

 

 

 

 

✺ 상처입은 대지가 아테바인의 손길로 회복되었다..

일주일 뒤면 드디어 100일이 되는 날.
드라켄헤임 중앙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성, 《라 시르》로 모인다.

 

저 너머로 넓다란 늪지대가 보인다.
조금만 더 걸어 들어가면 훅 깊어지니, 늪 주인의
방문자가 아니라면 발이 빠지지 않게 조심하도록 하자.


아름답게 얼어붙은 성이 저 너머로 흐릿히 비춰진다.
근처엔 얼어붙은 동사체가 한 가득 … 어쩌면, 부러
이 근처에서 신선한 고기를 추수하는 이들이 있을 지도?


황금빛으로 빛나는 강이 보인다.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레어인 걸까?
뛰어 넘어갈 수 없다면, 호수엔 되도록 발을 들이지 않는 게 좋겠다.


까마득히 높은 바위산이 보인다.
저 위엔 무엇이 있을까? 어렴풋이 문 같은 게 보이는 것 같기도...


파헤쳐진 밭이 하나 보인다. 무시무시한 경고문도 있군…
누군가 재배하고 있는 걸까? 고개를 들면, 맑은 호수 뒤로
집 같은 것이 보이는 듯 하다. 방문해 볼까?


고개를 들어 보기 어려울 정도로 높은 고목은 굵기마저 엄청나다.
그 주변을 구경하고 있자면, 커다란 문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누구의 레어가 나오는 걸까?


여러 나무들 사이로 거목이 우뚝 서 있고,
그 뒤로 폭포가 흐른다. 꽤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따금 풍경에 걸맞는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흐드러진 꽃밭 사이로 높다란 나무가 우뚝 서 있다.
그런데 … 그 틈에 철로 된 생물체가 보이는 것 같은데?
이 땅을 지키는 수호물인 걸까? 얼핏 보기엔 얌전해 보인다.


깜깜하기 그지없는 동굴을 지나면, 붉은 꽃잎이 흐드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시야 안에 탁 들어온다. 고개를 돌리면,
연꽃과 퍽 닮아 보이는 거대한 무언가가 보인다. 레어인 걸까?


어두운 밤, 발 앞을 발광 생물이 희미하게 비춰주고 있다.
눈 앞에 곧 드러나는 것은 세 개의 높다란 문.
열어도 주인에게 실례가 되지 않는 문은 셋 중 무엇일까?


장대한 숲 사이로, 흰 구조물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무언가의 문일까? 전부 당첨은 아닌 것 같은데 …
누군가의 레어로 들어가자면 머리나 운 중 하나는 있어야할 것 같다.


체리 나무 하나가 둥치 위로 자리잡고 있다
우연히 있는 걸까? 아니면 이 땅에 자리잡은 주인이 좋아하는 걸까?
고개를 돌려 보면, 흰 석조물로 된 건물이 하나 눈에 보인다.


저 너머로 안개 자욱한 산이 보인다.
산의 중앙엔, 요새처럼 보이는 성이 자리하고 있다.
용이 자신의 권능으로 지어낸 걸까? 그렇다기엔, 묘하게 …


둥글고, 평화로운 모양새의 레어 … 에서 마물이 나타났다지?
그 덕에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다는데 … 과연 그 레어가 무사할지.. 걱정되었으나,
강력한 복구 권능을 가진 누군가에 의해 복원된 모양이다.


용암이 흐르는 레어가 있다고 한다. 끝없이 순환되는
용암은 퍽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데 … 어떤 장소인 걸까?

 

 

「드래곤」

적절히 먼지를 털어낸 레어는 한층 정돈되어 보인다.
분명 방문하는 소환자들마다 감탄을 펼쳐내기 바쁠 테지.


소환자들은 그새 이 땅에 잘 적응한 듯 보인다.
물론 가끔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지만 …
아직 시체를 치우진 않았으니, 잘 적응한 게 맞을 테지.


동족간의 대화에선, 소환자들에 대한 화제가 빠지지 않는다.
언제부터 그들이 우리에게 이런 존재가 된 걸까.
새삼 신기한 일이다.


작은 생명체를 데리고 다니는 동족이 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모두가 번식을 한 것은 아닐 테고, 마물의 알이라던가 …
용에게 자란 마물이라니, 극히 드문 일은 아니지만 생경스럽기는 하다.


레어 주변을 돌아 보자면 때때로 인간의 흔적이 스며 있다.
소환자의 것일 그 흔적은 이제는 꽤나 익숙해져서, 꼭 아주 먼 옛날.
인간과 용이 함께했던 시절을 일부분이나마 닮은 듯 하다.


부정한 마물 살로메가 휩쓸고 간 자리는 아테바인의 권능으로 지형이 회복되었다.
바이스의 레어도 무사히 복구되었겠지.
안타깝게도 이미 생명을 잃은 꽃과 나무는 돌아오지 않지만..
늘 그렇듯 느긋히 기다리면 금새 새로운 싹이 틀 게다.


마물로 변했던 님프들이 백색으로 돌아와 전보다 더욱 숲 곳곳을 가꾸고 있다.
그러고보니.. 그 일 이후로 마물들이 굉장히 얌전해진 것 같은데… ...
분노의 요정이 담고 있던 온갖 부정과 관련된 것이었을까?
살로메는 이 거대한 숲의 스트레스가 모인 무언가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주기적으로 그 녀석을 터트려주는 게 드라켄헤임에는 더 좋을 지도...


이번에 출현했던 부정의 마물은 그 전에 보았던 살로메보다 훨씬 거대하고 위협적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아 곪아버린 상처처럼...  
그러고보니, 그 이후로 마물이 눈에 띄게 온순해진 것 같은데..?


소환자는 어느 새 자신의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스스로 익힌 것으로 보인다.
넘쳐흐르던 파워를 주체하지 못하더니,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사용한다.
살생을 두려워하던 모습도.. 꽤나 덤덤해진 모양이다.
그래. 그게 바로 ‘생존’이라는 거겠지.


끝없는 구멍의 발생을 억제하는.. 신비한 마물의 알.
오래 살아 온 용생에서도 처음 보는 존재이다.
태어나는 마물 역시 지금껏 보았던 마물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이고,
무엇보다.. 드래곤에게 본능적인 두려움을 품는 보통의 마물과는 다르다.
아직까지는 별 다른 능력이 눈에 띄지는 않는데 … ...


우리의 레어에 방문하는 소환자들이 종종 있다.
레어에 온 손님이 동족이 아닌 인간이라니.. 기분이 묘하면서 들뜨는 것도 사실이다.
괜히 이것 저것 꺼내서 보여주고 싶잖아.
가만, 내 레어를 청소해놨던가?


동맹에는 응했지만.. 아직은 종족 전체가 필요한 사안으로 보이지 않아
나서지 않고 드라켄헤임 깊숙한 곳에서 잠을 자고 있거나,
여행을 떠나있는 이도 있다. 
뒤늦게 기아스의 열병을 앓으면… 무슨 말을 할까.


그러고보니 오늘… 쓰레기 버리는 날이었던가?
이런... 늦으면 렌이 잔소리를 할 텐데.
보름이 뜨는 날에는 《라 시르》에 모여 쓰레기를 소각하는 날이다.


심심한데 《라 시르》에 가볼까? 
그 거대한 백색의 성은 전체 회의 소집 장소로 쓰이기도 하지만, 
별 다른 일이 없어도 모여서 다과를 들거나 수다를 떨기도 하고
누군가 여행에 돌아오면 이야기 보따리를 푸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모든 드래곤의 레어에는 각자 다른 형태의 커다란 소라 고둥 아티팩트가 놓여있다.
무언가 안건이 있을 때 그 쪽을 통해 로드가 말을 전달하곤 한다.
이 쪽에서 발신하는 것은 불가하지만, 소집이 필요한 일에는 유용하게 사용된다.
끄기 전까지 같은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니, 어서 끄고 소집 장소에 가보는 게 좋겠다..

 

 

「소환자」

물고기를 낚는 데에도 이젠 꽤 익숙해졌다.
모닥불에 구워진 생선은, 생각보다 맛이 좋았다.


슬슬 이 곳에 나는 열매들이 어떤 맛인지 알게 됐다.
무엇이 제일 사각이는 식감인지, 무엇이 제일 달콤한지.
색다른 맛을 찾을 때엔 조금의 즐거움이 스민다.


드래곤의 레어는 생각보다 곳곳에 있는 모양이다.
그 주인의 개성을 하나같이 품고 있어, 몰래 구경하기가 좋다.


슬슬 검을 휘두르는 데에도 익숙함이 더해진다.
검사라기엔 무리가 있겠지만, 제 할 일을 어느정돈 해내게 됐다.


비가 오면, 몸은 자연스레 빗발을 피하기에 가장 좋은 곳을 찾는다.
오늘은 … 오던 길에 보았던 동굴로 숨어드는 것이 좋겠지.


근처에 서식하던 동물이, 나를 보더니 움찔하는 기색을 띄곤
스스로 자리를 옮긴다. 소환자들 중 누군가에게 호되게 당한 걸까?


누군가의 알이 보인다. 영양가가 있으니 삶아 먹어도 좋겠지.
그러고 보니, 최근 작은 생명체를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 늘었다던데...


드라켄헤임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지만,
주된 행동반경 내에선 적절히 익숙해진 기분이 든다.
이 곳을 돌면.. 봐, 늘 커다란 나무가 있지.


드래곤들에게선 작은 도움을 받고 있다. 먹을거리라던가, 잠시 잘 곳 등.
그들의 조언을 받은 채 생존해나가다 보면, 왠지모를 유대감이 든다.


이따금 다른 소환자들을 마주치기도 한다. 그들을 보면 마치 외국에서
고국의 사람을 만난 기분이랄까. 어쩌면 동료애도 여기서 길러질지도?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온갖 종류의 마물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크고 작은 형체가 다양한 마물은 그 모습에 상관 없이 어느 쪽이든 위협적이다.
잠깐 조는 순간 마저 목숨의 위협은 늘 있는지라, 감각이 아주 예리해져 생각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 벌레 형태의 거대한 그것에는…… 언제 보아도 익숙해지기가 어렵다.


몸이 적당히 더러워지면, 알아서 호숫가에서 씻거나 온천에 담그게 됐다.
야외에서의 목욕은 아직 묘한 기분이 들지만, 개운한 감각을 놓칠 순 없지.


불을 피우는 것은 몹시 어렵다고 들었는데, 신체의 향상 덕분인지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았다. 다만, 종종 막대를 부러트리기도 …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이 파워에도 이제는 살짝 익숙하게 되었다.
만약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조금은 아쉬워질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더니, 따져보면 엄청나기 그지없는 상황인데도
드러누워 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자면 편안함이 몰려들어와,
조금은 치유받는 느낌이 된다. … 자연의 힘은 꽤 굉장하구나.

 

 

 

100일이 지난 지금. 헬리오스는 하나 둘 《라 시르》에 모이고있다.

 

 

✺ 그런데... 어라?
저 소환자는 종일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영상을 촬영하던 그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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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 볼 때, 심연 또한 그대를 들여다 볼지니."

 

 

2.25
✺ 이상하리만치 고요하다가도, 고통에 찬 신음 소리가 멀리 들린다..

✺ 온 몸의 세포가 모두 파괴되었다가, 재생되기를 반복한다.

 

고통에 찬 이들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울려퍼진다.
물론, 나의 상태 또한 …


누군가 쏟아놓은 피가 정원 구석에 보인다.
이 피의 주인은 어디로 간 걸까.
무슨 생각을 하며 이 구석까지 들어왔던 걸까.


온 몸이 뜨겁다. 불덩이 속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이 이러할까?
숨이 턱턱 막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같더니, 
실제로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듯 하다. 찢어질 것만 같아.
눈을 뜨면 사지 중 하나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닐까 … ?


시종들은 모두 더없이 죄송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도, 꼭 무언가 기대하는 듯이. 우리를 본다.


“진통제라도 줘...”
”죄송하지만, 이번 열병은 진통제가 듣지 않습니다.”
”드래곤의 관련 권능은?”
”그 또한 효과가 없다 합니다.”
수없이 들은 말인 듯, 매달리는 사람의 앞에 선 시종이 차분하게 대답해 온다.


소환자들의 숙소에 비해, 드래곤들의 숙소는 소란이 낮다.
죽을 수도 있다는 것과, 절대 죽지는 않는다는 것이
같은 아픔 속에서도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낸다.


얇고 예리한 칼날로 온 몸이 갉아지는 느낌이다.
눈을 깜빡일 때 안구조차 욱신거린다.
생리적인 눈물이 줄줄 흐를 수밖에 없다.
어떻게 줄어들지도 않는 고통에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부수고싶은 충동이 든다.


분주히 숙소를 드나드는 시종들의 품에는 사용한 천이 가득이다.
누군가의 혈흔, 토사물, 배설물까지…
그들은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고 있다.
그야 그럴테지..


먹은 것도 모두 토해내 이제 나올 것도 없는데, 계속해서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폐부가 찌부러드는 느낌과 동시에 눈물이 주르륵 나온다.


고통은 파도처럼 밀려 오다가 어느 순간 씻은 듯이 사라진다.
그리고 잠시 후 몰려오기를 반복한다.
길게는 몇 시간 단위로 끊이지 않고, 괜찮은 상태일 때는 잠시 산책도 할 수 있다.

 

 

「드래곤」


여행 중도 아닌데, 이러한 고통을 인간의 형체로 겪는다니.
특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가만히 누워 있으면, 생각지 못한 상념들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가령, 오래 전의…


“본체로 돌아가면 고통이 조금은 덜해질까.”
누군가 심드렁히 읊는 소리에 시종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다.


자신을 다스리지 않으면, 참을 수 없는 고통에 큰 일을 저지를 지도 모르겠다.
어떤 드래곤이 작은 기둥을 하나 부수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한 번 터진 코피가 두 시간째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거로 죽지는 않겠지만.. 입고 있던 옷이 모두 흥건히 젖을 만큼 피범벅이다.


참을 수 없는 두통에 머리를 짚었다가 털이 한웅큼 빠져나왔다.
본체의 모습이었다면 비늘이 떨어져나갔을 것이다.


무언가 살아있는 것을 송곳니로 물고 뚫지 않는다면 미쳐버릴 것만 같다.
대신 깨문 입 안의 살은 이미 너덜너덜하다.


손으로 가슴 뚫어 뜨거운 무언가를 직접 꺼내고싶다.
그러면 전부 해결될 것 같다.


성장통의 아픔이라고? 누가 그런 말을..
차라리 성장통이 나을 것이다.
이 고통을 작은 존재들도 겪는다니, 심장을 사용하기 전에 미쳐버리는 거 아닐까.


아픔이 끊이지 않는 상태로 의식이 멀어졌다가, 가까워졌다가 반복한다.
이대로 무언가를 놓으면 그대로 미친 용이 되는 거겠지.


성장통으로는 <완전한 존재>가 되었는데,
비슷한 이것으로는 처음으로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니.
우스운 일이다.


고통으로 권능의 조절을 못 하게 되면 어쩌나 싶었는데.
권능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 무방비한 상태가 될 뿐이다.


텅 빈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며 자신의 한 쪽 팔을 질겅질겅 씹고 있는 동족이 보인다.
짐승이 뜯어먹은 것과 흡사한데.. 아니, 표현 그대로일지도.


바로 앞에서 말하는 목소리가 물 속에 가라앉아 있는 것처럼 먹먹하게 들린다.
턱이 떨려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아 더듬을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동맹을 수락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빌어먹을 약속의 종족.


우리를 창조하고 굽어 살피는 찬란한 솔루스여.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
엿이나 먹으라지.

 

「소환자」

“화장실 변기도 없는 데서 토하려니 기분이 좀 그렇네요”
누군가 말을 붙여온다.
그게 중요한 거야…?


누군가 말한다. “더 이상 눈물도 나오지 않아요.”
왤까? 익숙해 져서? 모든 걸 포기해서?
손해라 생각되니까? 아니면 -...


“죽기 전에 하고 싶었던 것 없어요?”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린다.
왜 죽음을 준비하는 것 같은 말을 하는 거야.


인간의 몸이 70%는 수분이라는 말이 이래서일까?
온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고 있다…


“의사 선생을 불러오라니까!” 누군가 난동을 부린다.
몸에 저렇게나 힘이 남아 있다니 … 건강한 사람이네 …


때때로 우리들의 세계에 두고 온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이 지금 내 모습을 보면 무어라 할까 …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통받아야 해?”
뒤따라 오는 울음소리.
기분이 묘해진다. 


내 몸을 마음대로 가눌 수 없는 경험은 드문 일이다.
우리는 정말 강해질 수 있을까…?


거울을 보니, 눈에 실핏줄이 터져 있었다.
모두가 이렇게 된다면 조금 무서울지도 …


“엄마, 엄마…” 나이 어린 학생이 하염없이 울고 있다.
저 아이의 부모님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할까.
애타게 자식을 찾고 있을까.
이 광경을 보게 된다면, 같이 울음을 터트릴까 …


한 번 터진 코피가 한시간째 멈추지 않는다.
열병이 지나가기 전에 출혈과다로 죽는 거 아니야…?
머리는 어지럽고, 몸은 뜨겁고, 계속 흐르는 피를 닦아내는것조차 번거롭다.


"돌아가서 자서전을 쓰게 되면, 꼭 이번 챕터를 길게 쓸 거야."
누군가 결연한 목소리로 말한다. 돌아간다.
…그건 얼마나 먼 미래의 일일까?


"지금쯤 잘렸으면 어떡하지…"
"역시, 여기서 돌아갈 때 금은보화를 싸 달라고 하자."
누군가 대답 대신 웃는다. 며칠만에 듣는 웃음소리.


“다행이야.. 내 딸이 여길 오지 않아서… 내가 대신 견딜 수 있어서..”
황궁의 시종에게 돌봐야 할 자식이 있다며 울부짖었던 어미다.


가라앉지 않는 고통때문에 3일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
잠들려고 해도 뼈 마디 안쪽까지 갉작이는 아픔에 신음만 흘릴 뿐이다.


시종을 폭행하는 사건이 종종 일어나는지, 곳곳에 경비대가 배치되어 있다.
심한 사람은 침대에 묶여 구속된다는데.. 배변은 어떻게 하는 거지?
...시종이 들고 지나간 커다란 물그릇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드래곤도 같은 고통을 겪고 있을까?
어디선가 고통스러운 포식 동물의 울음 소리가 들려온다.


언제 끝나는 거야?
언제 끝낼 수 있어?
끝나기는 하는 거야?


쿵, 쿵, 소리가 나면서 벽이 울리나 싶더니 누군가 벽에 머리를 찧고 있다.
말릴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눈 앞의 풍경이 어느 영화관의 스크린 속에서 감상하듯이 느껴진다.


꽉 쥔 주먹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엉망진창으로 파인 손바닥은 제 손톱으로 긁은 흔적이다.

 

 

 

2.29
✺ 문득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하나, 둘, 열병을 털고 일어나는 자들이 보인다.
...그렇지 못 한 자도. 그들을 위한 진혼제를 한다는데... ...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사망한 이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제가 펼쳐지고 있다.
그들의 영혼이, 부디 이 낯선 세계에서 길을 잃지 않기를.


예일의 시민들이 ‘위대한 이의 죽음’ 을 기리고 있다.
위대한 이들. ...그들이 그렇게 불리길 원하기나 했을까?


진혼제는 전체적으로 엄숙한 분위기다.
그럼에도, 우리가 거리를 거닐 때 그들은 희망에 찬 얼굴을 한다.
마치, 신을 보는 듯이.


어딜 가나 흰 천이 나부끼고, 흰 꽃잎이 흩날린다.
그 백색에 파묻혀 있으면,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시신을 태우는 장소 근처로 수없이 많은 향이 꽃힌다.
서서히 섞이는 향은 조화를 이루듯 무척이나 아름다워서,
황홀하다 느끼는 스스로를 낯설게 한다.


종종 예일의 시민들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다.
꽃이며, 과일, 혹은 편지. ...묘한 기분이다.


열병을 막 이겨냈을 때, 시종들은 우리에게 ‘축하드린다’ 고 말했다.
… 그 말에 누군가 벌컥 화를 냈다. 이해하지 못할 반응은 아니다.


‘제단에 바칠 꽃이 필요하신가요?’ 흰 꽃이 가득 든 바구니를
어린 아이가 내민다. 따로 돈을 낼 필요는 없어 보인다.


예일의 식당 중 몇몇이 ‘소환자에게 무료 제공’ 이라는 광고를 붙였다.
‘드래곤에게 무료 제공’ 은 어째서 쓰여 있지 않을까 … ?
소환자라면, 여기서 다양한 음식으로 배를 채워도 괜찮을 것이다.


진혼제와는 별개로, 신전에서 죽은 이들의 명복을 비는 예배가 열린다.
관심이 있다면, 한번즈음 그 속에 묻혀 기도를 올려도 좋으리라.

 

「드래곤」

소환자들의 물건은 시신과 함께 모두 태워진다고 한다.
물건쯤은 보관해두어도 좋을 텐데. 아쉬운 일이다.


소환자의 재생 능력은, 아마도 창조의 영역이라 불리는
우리의 권능을 초월하는 힘으로 예상된다고 들었다. 
...고작 인간 따위가?


여즉 소환자를 믿을 수 없다는 동족도 있다.
신체만 변화했으면 무엇하느냐,
제대로 검도 휘둘러보지 않은 그들을 믿고 심장을 바칠 수 있는가.


살아남은 소환자들은 과연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아직 그들이 천사를 없앨 수 있으리라고 확신할 순 없으리라.


그들의 몸이 준비되었으니, 이제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할까.
바로 실전에 들어가기엔, 아직 서툰 그들이 헛되이 희생될 것인데-


드래곤은 그 누구도 죽지 않았다. 당연스러운 일이다.
허나 그로 인해, 원망스러운 기색의 소환자들이 조금 생긴 듯 하다.


‘슬슬 레어에 들러 보고 싶은데’ 누군가 집이 그리운 듯 하다.
그러고 보니, 드라켄헤임의 공기를 슬슬 마시고 싶기도.


성장통도, 열병도 한 번이면 족하다.
다음엔 반드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긴 머리의 ‘신부’ 를 위시하여, 이계의 기도문을 읊는 이들이 보인다.
그들의 신은 아직 익숙지 않으나, 한번쯤은 함께 읊어도 좋으리라.


이제 우리는 소환자들과 더불어 천사와 싸우는 법을 익혀야 한다.
무엇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까. 한동안 연구가 필요하겠다.


여즉 소환자를 믿을 수 없다는 동족도 있다.
신체만 변화했으면 무엇하느냐,
제대로 검도 휘둘러보지 않은 그들을 믿고 심장을 바칠 수 있는가.

 

「소환자」

이전과는 전혀 다른 듯한 몸이다. 이게 기아스의 축복이라는 걸까.
손 끝을 쥐었다, 다시 편다. 다르지만, 여전히 내 것임엔 틀림이 없다.


망원경이라도 사용한 듯, 저 너머의 풍경이 눈에 훤히 보인다.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겠는걸 ...


누군가 넘어져 무릎이 까졌다. 그건 본래와 다르지 않은 걸까, 생각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가 놀랍도록 빠르게 회복됨을 볼 수 있었다.


텅 빈 옆 자리에 속절없이 시선이 가고야 만다.
이 자리의 주인은 불길 속에 재가 될 것이리라.
그 사람의 이름이, 무엇이었더라 ...


열병을 앓을 때 몸에 새겨졌던 상처는 씻은 듯이 사라져 있다.
몸만을 보면, 꼭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조금의 의문이 생긴다. 이 재생력의 끝은 어딜까?
우리는 얼마만큼 다치고, 또 얼만큼 살아남게 될까?


열병을 앓고 나서 뒷목에 새겨진 검은 성흔이라는 것은
꼭 죄인에게 찍혀진 낙인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죽었지만, 우리는 살아남았다.
그 사실이 묘한 부채감을 불러 일으킨다.
모두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었던 걸까.


누군간 아직도 이 상황이 와닿지 않는 듯 하다.
본 세계로 돌아가게 된다면, 분명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


솔루스에게 죽은 이들의 안식을 비는 기도문은 낯설기 그지 없다.
그러나, 오늘 하루쯤은 따라해 봐도 좋으리라.

 

 

✺ 예일 황성 근처의 가장 큰 광장.
장작과 꽃 위에 시신들이 깨끗하게 단정되어 가지런히 늘어서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 온 사람들이니, 그들의 방식대로 보내준다고 했던가요.

이 땅의 사람들은 모두 솔루스를 믿지만,
지금은 조용히 두 손을 모아 다른 곳에도 존재할 지 모르는 신에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합니다.

로브를 입은 드래곤 셋이 걸어와 장작 앞에 섭니다.
아주 드물게, 특별한 황족에게 하는 장례법대로 드래곤의 권능으로 불을 붙이려는군요.

 

✺ ... ... 어디선가 노랫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 깊은 밤의 인도자 렌의 푸른 불꽃이 진혼제의 시작을 알립니다.

 

✺ 고요한 새벽의 인도자 리치의 손길 끝에서 나온 빛이,
장작과 꽃더미를 푸른 재로 만들어 나비처럼 나부낍니다.

 

✺ 찬란한 아침의 인도자 옐라시에의 불꽃이 그들을 감싸 안듯 타오릅니다.

✺ 제레미엘이 나직한 목소리로 기도문을 읊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을.

부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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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

 

2.21
✺ 내일은 황성 중앙의 거대한 홀에서 저녁 만찬이 열린다고 한다.
소환자만 400여명이 넘고, 드래곤은 50여명이 모일텐데. 모두 수용할 수 있을만큼 거대한 곳이다.
지금은 만찬 준비로 미리 테이블이 셋팅되고 있다. 시종들이 종일 분주하게 움직인다. 


「드래곤」


옐라시에와 마드론이 황성 공터에서 한바탕 벌이고 있다.
저 녀석들, 만나자마자 또냐....


슈르마가 또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다.
아니, 평소에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구분이 안 가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닐 수도...
가 아니라, 역시 자는 게 맞잖아?!

 
황궁에 온 후로 가장 바쁘게 돌아다니며 인간을 탐구하는 드래곤 둘을 꼽자면,
단연 아테바인과 환일 것이다.
이런 상황이 퍽 흥미로울테지.



노아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뒷통수를 치고 있다...
은근슬쩍 주변에 사람을 끌어들이는 건 변하지 않은 모양이다.
본인은 자각하지 못하는 것 같지만.

 

카스카다가 종이와 펜을 들고 무언가를 메모하고 있다.
무심한 인상으로 처음 보는 인간에게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그이나,
직설적이고 통쾌한 화법을 듣고있자면 대화 상대로 좋은 인물이지.


 

「소환자」


"텔! 레! 포! (처억..)"
어느 새 알 수 없는 주문과 요상한 포즈가 유행처럼 돌고 있다.
저렇게 하면 집에 갈 수 있나..? 나도 해볼까?
...갈 수 있으면 진작 갈 수 있었겠지..

 

어디서 로또 당첨자의 기운을 받아볼 수 있댔는데..
벌써 끝났으려나?
그러면 로또는 어떻게 된 걸까?

 
황궁 구석, 볕이 잘 드는 곳에서 신부님으로 보이는 사람이 기도하고 있다.
이름이... 제레미엘이랬던가?
여기에서도 우리 세계의 신에게 기도가 닿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공구함을 메고 있는 청년이 멀거니 서 있다.
사색에 잠긴 걸까... ...
그게 아니면..?


귀엽고 작은 드래곤을 보았었는데.. 저 멀리 굉장히 닮은 어른 드래곤이 보인다.
형제? 아니면 부모?....아아아아!
작아지고 있잖아!!

 


 


2.22
✺ 오늘은 황성 중앙의 거대한 홀에서 저녁 만찬이 있다고 한다.
홀은 꽃으로 치장되어 있고, 조금 일찍부터 간단한 과일이 준비 되어있다.
벌써부터 하나,둘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시고 있다.

✺ 어느 새 갖가지 음식들이 나오고 저녁 만찬이 시작되었다.
넓은 홀은 사람으로 가득 찼고, 종족이 다른 서로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드래곤」


느즈막히 도착한 동족이 느긋한 걸음으로 들어온다.
오늘 황성 홀에서 있을 저녁 만찬을 알려줘야겠지.


황성의 중앙홀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
이런 치장은 일 년에 한 번,《솔루스가 머무는 날》에나 볼 수 있을진데.
홀의 한 켠에서는 우리의 신을 위한 음악이 잔잔하게 연주되고 있다.



「소환자」


느즈막히 소환된 소환자들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역시 꿈이라고 생각하는 게 전형적인 패턴이긴 하구나..

 
황성의 중앙홀은 꽃과 은은한 조명으로 잔뜩 치장되어 있다.
며칠을 여기에 머물렀지만, 이런 광경을 보니 새삼스럽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 갈라테이아 황제가 입장했다. 

 

✺ ... ... ...



「드래곤」

정말로 이세계의 기사와 계약을 하게 되고, 그들에게 심장을 내어준다면.
드래곤의 힘을 온전히 사용할 수는 없는 상태가 되겠지.

 
오래 산다고 해서 고통에 무뎌지지는 않는다.
어릴 적에나 겪었던 「용의 성장통」과 비슷할 것 같다는데.
… ...다시 느끼고 싶은 고통은 아니다.

 
「성장통」과 비슷한 고통이라니… ..
동맹에 동의했고, 어떠한 대가가 있을 걸 감수하고 황궁에 왔지만.. 끔찍한 현실이다.


“뭐, 성장통?!”
기겁을 하는 동족이 보인다.
무리도 아니지. 차라리 태초의 오물에 뛰어드는 게 더 나은 고통인것을.


아주 드물지만 성장통으로 「실성한 용」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부디 돌아올 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동족이 없길.


초대의 예언은 용이 기사의 검이 된다는 것. 
승패는 알 수 없다... 그럼, 결과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일 테지.


“샘의 물은 본체로 마셔야 하는가?” 누군가 중얼댄다.
본체라면, 샘 하나쯤은 금세 동나지 않을까 싶은데.


“인간의 만찬은 참으로 오랜만이었지. 더 먹고 싶군.” 동족 하나가 느긋히 만찬을 회상한다.
퍽 여유로워 보이는군.


소환자 하나가 결연한 얼굴로 일어선다. 
저 자가 선택하려는 것은 자신의 운명과 사명에 대한 순응일까, 혹은 반항일까.


“마음에 드는 인간이 있다면 좋을 텐데.” 동족 하나가 중얼거린다.
마음에 든다는 건 무슨 조건일까?
강한 것? 희생적인 것? 아니면-...


인간에게 힘을 주었을 때, 우리는 처음으로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
그건 어떤 기분일까. 알고 싶기도,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정말 저들이 해낼 수 있겠나.”
누군가 낮게 읊조린다... 「완전한 존재」인 우리조차 하지 못한 것을,
이 세계의 인간도 아니었던 이들이, 정말 할 수 있는가. 

 
새로운 맹약이 늘었다.
이 숨이 다할 때까지,
세계의 존엄을 위하여.


시종들이 우리가 열병을 나는 동안 필요한 것을 준비 중이다.
내가 원하는 것도 일러 두어야겠군.


느릿히 흘러나오는 성수는 퍽 찬란히도 빛난다.
꼭, 우리의 신과 같이.

 
소환자들의 안색이 좋지 않다.
필멸자에게는 벅찬 일인가.





「소환자」


여기가 어딘지, 이건 꿈인지, 붕 떠있던 분위기는 ‘만찬’이후 완전히 깨졌다.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이다.
애초에 선택지라는 게 있는 ‘부탁’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성장통?!”
기겁을 하는 뿔 달린 사람이 보인다.
성장통이 뭐 어쨌단 말이야, 이 쪽은 목숨이 걸렸단 말이야!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 집에 돌아가게 해달란 말야…!”
한 쪽에서 황궁 관리인과 실랑이하는 「소환자」가 보인다.

 
한층 예민해진 공기에, 여기 저기에서 다툼이 벌어졌다.
싸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텐데..

 
정말로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걸까?
갑작스럽게 세상을 구해달라니, 말이 돼?

 
세계를 구하기 전까진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다.
돌아갈 수 없다... ...


어째서인지 황제가 말했던 「등불을 든 죄 지은 자」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맴돌고있다.

 
“이런 걸 시킬 거라면, 적어도 애들은 데려오지 말았어야지!”
중년의 누군가 화를 내고 있다.

 
“기사라는 거..무보수 노동은 아니겠죠?”
”그럼 신고해야지..”
“황정인데…? 황제를? 어디에..?”
현실적인 듯 현실적이지 않은 대화가 기둥 뒷편에서 들려온다...

 
“저기요, 여기서 죽으면 묘비는 만들어 주나요?
제사는요? 전 치킨 좋아하는데.”
누군가 천연덕스럽게 시종을 붙잡고 물어보고 있다. 성격 참...

 
“마신다, 마시지 않는다, 마신다, 마시지 않는다..”
누군가 꽃잎점을 보고 있다.
정신이 나간 건 아니겠지?


저 물을 마시고, ‘이 세계에 맞춘 몸’ 을 얻은 나는,
지금까지와 같은 ‘내’가 맞는가?
철학놀음에 답해줄 이는 보이지 않는다.

 

 

 

✺ 선택받은 아이들과 드래곤의 모험이 시작된다....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헬리오스의 하루 

 

 

 

 2.24
 ✺ 밤이 지나가도 또 다시 아침은 왔고 시간은 흘러간다.

 

아직 열병이 돌기 전.
성수를 마신 사람들은 묘하게 덤덤한 얼굴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암묵적으로 만찬때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있다.


기아스의 열병은 내일부터 돌기 시작한다고 했다.
열병이라니.. 몸살이나 감기처럼 아픈 수준이면 좋으려만.


열병은 짧게는 4일, 길게는 일주일은 앓을 수 있다고 하던데...
지금 잠깐의 휴식이 겉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성수는 평범하고 약간 비릿한 물 맛이었다.
본래는 아침마다 솔루스의 신전에 바치는 단순 의례상의 그것이었을텐데.
정말 고작 그거로 큰 변화가 일어날까.


끝까지 성수를 마시지 않은 소환자 무리가 보인다.
그들끼리 모여 기도문을 외우는 듯 하다.


황궁에 펼쳐져있던 결계가 사라졌다는데...
쾌적한 온도로 느껴졌던 이 곳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아차, 아직 2월. 겨울이 채 지나지 않은 때이다.


드래곤과 소환자의 숙소 사이에 있는 넓은 공터에 장작불이 타고 있다.
담요를 두른 자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작은 웃음 소리가 들렸다.


공터 주변에는 앉을 의자가 놓여있다.
약속이라도 하듯 어느 새 모여드는 인적에 시종들이 담요와 따듯한 스프를 나눠준다.


지난 이틀이 거짓말처럼 느껴질만큼 묘하게 안정적인 분위기이다.
오히려 그 안정감에 위화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장작불 근처에는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꼬챙이들이 끼워져있다.
소세지, 고구마, 말린 육포까지.
시종들이 한 켠에 간단한 술을 준비해두었다.


내일이 되면, 무엇이 바뀔까.
...지금은 생각하지 말자.
고민해도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그 며칠 사이 벌써 친분을 쌓았는지,
각자의 종족이 다름에도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는 무리가 보인다.
이 세계의 주민은 드래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진데,
소환자는 적응이 빨라 보인다.


숙소에만 틀어박힌 이들도 많지만,
하나 둘 밖으로 나와 넓은 공터 곳곳에 자리잡는다.


공터의 곳곳에 장작불이 타오르고 있다.
아직 채 가시지 않은 겨울 바람이 불어도,
담요를 두르고 그 앞에 자리하자면 포근함이 느껴진다.


어디선가 웃음기 어린 담소가 들려와 돌아보니,
넓은 공터의 곳곳에 놓인 장작불에 듬성듬성 인적이 모여 있다.
내가 아는 얼굴도 있을까?


솨아아, 바람이 불자 나뭇잎 스치우는 소리가 꿈결같다.
어쩐지 현실감이 떨어지고 붕 뜨는 기분이 든다.
여기서 뭘 하고 있었더라..


“갈라테이아 님께서…”, “아무도…”,
작게 말하던 시종이 이 쪽의 눈치를 보고 입을 다문다.
함구령이라도 있었는지.
잘난 황제는 만찬 이후로 얼굴을 비추지 않고 있다.


시종이 조용히 드래곤 사이를 다니며 소곤거린다.
“혹시, 회복 관련된 권능이 있으신 분이 계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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