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원의 달콤한 과실."
✺ 여기가 안개의 도시, 아리아... ...
지평선 끝으로 안개에 감싸여진 도시가 보인다.
저 곳이 ‘아리아’? 지금껏 지나쳐온 다른 아르투스의 도시들과 달리,
쳐다보는 것 만으로도 귀가 먹먹해지는 적막이 느껴진다.
아리아에 진입했다. 회색빛에 가까운 두꺼운 안개가 도시 전체를 감싸고 있다.
그런 것 치고 그 정도의 습기는 느껴지지 않는데… ...
어쩐지 몸이 무겁다.
안개에 감싸인 도시 곳곳에 빈 ‘고치’가 보인다.
저건... 전에 보았던 1급 천사의 '그것'이 생각난다.
어디선가 낭랑한 현을 퉁기고, 이어서 여러 사람이 입을 모아 합창하는 노랫소리가 따라온다.
이 노래는 솔루스를 위한 찬송가같은데… …
노래 부르는 천사… 도 있는건가? 설마.
아리아의 안개는 소리를 잡아먹는다더니,
바로 앞에서 말 하지 않는 이상 조금만 떨어져도 목소리가 묻히고 만다.
귀가 밝은 드래곤과, 기아스에 각성한 소환자가 아닌 보통 인간이라면
바로 앞에 있어도 대화가 어려울 것이다.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백색의 천사.
이게 몇 번 째인지.. 아리아에 도착한 후로 자잘한 천사가 계속해서 등장한다.
그런데 묘하게 전투력은 약한걸… …
아리아의 ‘끝 없는 구멍’은 어디에 있지?
이렇게 안개가 짙어서야 ‘문’이 어디에 있는 지도 알 수 없다.
드래곤 몇이 날개를 펴고 상공으로 올라가보지만,
위에서 보아도 안개에 감싸인 도시는 좀처럼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뿌연 경관 속, 과거 생기 넘치는 도시였을 조각들이 보인다.
깔끔하게 정비 되어있는 수로, 당장이라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곤돌라,
납작한 패널 위에 올라서면 물 위를 미끄러져 나갈 수 있는 이동수단. 어느 날 갑자기 도시의 모든 사람이 증발한 것 같은 기이한 경관.
이상하리만치 깨끗한 안개 속 도시.
짙은 안개 속, 시장 거리가 늘어서있다.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지만, 방금 따온 듯한 신선한 과일이 나무 상자에 담겨 있고 싱그러운 꽃이 유리병에 꽂혀 있다.
… … 분명, 2년동안 방치된 도시라고 하지 않았나?
모든 감각이 아득히 멀어지고, 상실하기까지 하는 묘한 기분이다.
마치 몽롱한 꿈 속을 헤매는 듯이… …
내가 방금 어느 방향에서 왔더라?
헬리오스와 떨어져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주변에 분명 아무 것도 없는 것 같지만..
동시에 사방에서 시선이 느껴지는 건… 착각이겠지?
'뎅-뎅-'
멀리서 긴 종소리가 울린다.
아, 이 것도 착각인가.
계속해서 나타나는 천사들, 새롭게 등장한 소환자들은 그들에게 어느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물론 익숙해지지않는 소환자도... 음, 갈색 머리의 여성 소환자... 이신?
안개에 둘러싸인 고요한 도시.
잠깐의 휴식중에도 긴장 어린 표정을 짓고 있는 이신이 보인다.
✺ 아리아의 천사는 유독 '사람'에 가깝다.
✺ ... ... 사람?
“어… 안녕하세요? 외지인이신가요?”
...뒤에서 들려온 낯선 이의 목소리에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니, 멀끔한 청년이 라즈베리가 잔뜩 든 바구니를 들고 서 있다.
… ...생존자?
유쾌한 웃음 소리가 들리더니, 안개 속에서 도끼와 칼을 든 성인 두 명이 나타났다.
… … 민간인? 이 도시는, 천사에 완전히 점령된 지가 2년째라고 들었는데?
“어어어? 얼마만에 보는 외지인이야, 이거? 별 일이 다 있네.
젊은이, 아리아는 처음이야?”
“이봐, 그냥 보내기도 섭섭한데 ‘성소’에서 식사라도 제공하지.”
...그들은 앞장서서 그들의 터로 안내하기 시작한다.
차박, 차박… 수로 쪽에서 작은 물 소리가 들린다.
천사인가? 전투 태세를 갖추자 안개 속에서 드러난 것은…
일어서서 곤돌라를 젓고 있는 양갈래의 여자 아이.
“으아, 깜짝아! 누구세요?”
깜짝 놀란 아이는 곤돌라에 가득 실린 꽃더미로 엉덩방아를 찢는다.
뿌연 안개 속.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버터 냄새가 난다… ... 이런 곳에서?
냄새를 따라 가니 베이커리가 열려있고, 영업중임을 알리는 팻말이 꺼내어져 있다.
“뭘로 드릴까요~ 오늘은 과일로 교환 받고 있습니다…
어? 옷차림이… … 외지인이세요?”
아리아의 얼마나 깊은 곳까지 들어왔을까.
안개 속, 품 안에 과일을 잔뜩 들고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는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 과일은 아리아 북쪽 지대에만 있어서 잠깐 다녀왔거든요.
..어... 어른들이요? ‘성소’에 같이 가실래요?”
분명 아리아의 깊은 곳으로 들어오기까지 수많은 천사를 마주치고,
그들을 섬멸했는데… … 이 눈 앞의 멀쩡한 사람은 대체 뭐지?
‘성소’로 데려다 주겠다며 앞장서는 사람의 뒷 모습을 훑어보아도, 깔끔한 차림새에..
천사의 위협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다행인 건, 시도때도 없이 나타나던 천사는 보이지를 않네..
생존자를 발견했다. 다른 생존자는? 천사는?
분명 2년 전, 무저갱이 출현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마주친 천사의 수만 해도 엄청난데, 어떻게 무사한거지?
“아아, 외지인이라 궁금한 게 많으시겠네요.
저도 1년 전에 이 곳에 파견될 때만 해도 깜짝 놀랐거든요!
우선 따라 오세요.”
천사를 공격하고 튄 피를 닦아내던 그 때..
“아아…..!!”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지금.. 지금 무슨 짓을….!”
생존자..인가? 우선 진정시키려, 저것은 인간이 아닌 ‘천사’라고 설명했지만
오열하면서 정신을 차리지 못 한다… ...
생존자 발견. 어쩐다, 다른 헬리오스에게 알려야 할 텐데.
이 안개 속에서는 소리가 먹히고, 높은 곳에 가 봤자 한 치 앞도 가리어져 연락할 방도가 마땅치 않다.
우선 도시의 중심부쯤에서 모이기로 했으니.. 그 쪽으로 가볼까.
도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갈 수록, 나타나는 천사의 수가 줄어드는 것 같다.
어째서지..? ‘끝 없는 구멍’은 도시의 중심부쪽에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들었는데… ...
아무리 봐도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를 발견했다.
그를 따라 점점 더 도시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데… ...
“어! 뭐야, 벌써 들어가?”
앞장서던 사람이 누군가 아는 체 하며 부르는 것 같아 보니…
또 다른 낯선 이의 뒤에 따라 걷던 익숙한 헬리오스와 눈이 마주친다.
척 보아하니 저 쪽도 ‘성소’인가 뭔가로 안내받고 있는 듯 한데…
눈빛으로 어 너두? 야 나두! 를 교환했다… ...
아득히 멀리서 들리는 듯한 이 노랫소리는.. 대체 출처가 어디일까?
정말로 노래를 부르는 천사가 있지 않은 이상…
여기에 살아있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근처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그리고 안개 속의 저 커다랗고 흐릿한 그림자는… … 드래곤?
무언가를 발견하여 신호를 쏘았나 보다.
우선 빠르게 합류해보자.
한참을 걷다가,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
익숙한 헬리오스의 얼굴.
그런데 그 옆에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
어찌된 영문인지 묻자 어딜 안내해준다고 하더라.
일단 동행할까...
안개 속에서 마주친 낯선 이를 따라 가자,
현을 퉁기면서 합창하는 노랫소리가 가까워진다.
앞서 걷던 이가 소리를 듣고 따라서 흥얼거린다.
“태초에 내게 와주신 빛- 우리와 하나 됨이라 하셨네-”
...찬송가인가?
숨 막힐 듯한 적막으로 둘러싸인 도시. 소리마저 안개에 먹힌 듯하다.
주변을 살피다 문득 눈에 띈 황금빛은... 보석을 든 알데바란?
분명히 사람이 보이지는 않지만, 시선이 느껴지는데 저래도 되는 걸까.
저러다 분명 저주받을 거야!
안개 탓에 감각이 둔해진 탓일까, 그만 무언가에 부딪히고 말았다.
뭐야 이 단단한 건...하고 올려다보니 알데바란이다.
어쩐지 평소보다 기분이 나빠 보이는데.
눈치껏 빠지기도 전에 뒷덜미가 붙잡히고 말았다.
✺ 어찌된 일인지, 다들 기묘한 안내인을 만난 모양이다.
「성소」에 익숙한 얼굴들이 모여든다.
짙은 안개가 점점 옅어지더니 도착한 이 곳이 바로... ‘성소’.
아리아 중심지에 번영하던 마을이라 그런지, 과연 깔끔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여기까지는 다른 곳과 다를 바가 없는데… …
하늘을 가르고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저 새까만 구멍은, 무저갱이 아닌가.
‘성소’라 불리는 마을에 도착하자, 안개가 사라지고 활기찬 거리가 보인다.
생존자들인가? 싶더니… 어디선가 나타난 아기 형태의 천사가 인간의 머리 위를 떠다니며 꺄르르 웃음짓는다.
이건 대체…?
인구수가 많지는 않아도, 모여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활기찬 마을에 낯설고..
아니 사실은 익숙한 것이 함께한다.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공격하려고 했지만..
깜짝 놀라 저지하는 안내인이 무슨 짓이냐며 무서운 얼굴을 한다.
“전처럼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아리아는 전보다 더 풍요로워졌어요.
보세요. 이렇게 아름다운 존재들이 함께하는 걸요.”
그렇게 말한 안내인은… 눈이 있을 자리가 파여있는
아이같은 형태의 천사와 손 끝을 마주하며 교감한다.
“여길… 떠나요? ..왜요? 2년 전에서야 제 존재의 본질을 깨달았는걸요.
그런 무례한 말씀을 하실 거라면 ‘성소’에서 나가주세요. 불쾌합니다.”
… …’천사’와, ‘무저갱’과.. 공존하는 삶을 원한다고?
생존자들의 마을은 아리아의 중심지에 자리했다.
안내자를 따라 들어갈수록 천사가 보이지 않는다 싶었는데… …
과연, 하늘에 ‘저런 것’을 달고 있었군.
한참을 걸어 「성소」라 불리는 곳에 도착했으나..
묘하게 소름 끼치는 감각에 정찰겸 그 곳을 빠져나와 무작정 먼 곳으로 떨어졌다.
‘우득, 우득,’ 흡사 육식동물이 사냥감을 뼈채로 씹어먹고 있는 소리… …
새하얀 천사는 과거 사람이었을 것을 뜯어먹더니, 허공을 응시하면서 그 자리에서 ‘고치’로 변이한다.
“헬리오스요? 그게 뭐예요? 와, 드래곤이 함께한다고요?
농담이겠죠. 저 뿔도 장신구잖아요? 저희 마을에도 있어요.”
이 곳은 위험하다, 천사는 인간의 적이다,
우리는 그것을 섬멸하러 온 ‘헬리오스’다.
차분히 설명을 해도 어리둥절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생존자들.
“왜 나가야 하죠? 지금도 충분히 행복한데요.”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요?”
어린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를 따라하려는 듯 웅얼인다.
…소통이 되는건가? 그럴리가.
넘어진 아이가 울음을 터트리니,
곁에 있던 천사도 그 아픔에 교감하듯 눈물을 흘리며 울음 소리를 낸다.
꼭 진짜 인간인 것처럼 눈물도 흐르는데, 거북한 기분만 들 뿐이다.
“아아, 밖에 있던 것들을 보셨군요.
그 고치는 ‘완전한 존재’가 되기 위한 과정이랍니다.”
그 말을 들은 진짜 ‘완전한 존재’의 눈썹이 슥 올라가는데… ...
「성소」의 천장에 넓게 펼쳐진 것은… … 순간, 밤하늘로 보였던.
하지만 쳐다보고 있으면 그 안이 묘하게 울렁거리는 것이, 절대 하늘일 리가 없지.
저건 구멍이다. 세계에 뚫려서는 안 됐을 구멍.
“1년 전에 여기에 파견됐을 때는 저도 놀랐어요.
생존자가 있을 줄은 몰랐거든요. 같이 온 사람들은… …
으음, 그게 중요한가요. 지금이 좋아요.
혹시 나가시거든 가족에게 안부 인사를 전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 여기에 새 가정을 꾸렸거든요.”
성소에 하나 둘, 모이는 헬리오스는 저마다 묘한 표정이다.
당황, 경악, 거북함, 궁금증, 그 모든 것을 품고 우리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우선 상황을 알아봐야겠지… …
다행인 건 ‘성소’의 사람들은 외지인인 우리가 상당히 반가운 듯,
이것 저것 챙겨주려고 한다.
적의보다는 낫겠지.
성소 주변에는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키가 작아 높은 곳에 손이 닿지 않는 아이를 대신하여 '천사'가 꽃을 따 준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서도 새로운 생명은 태어난다.
만삭의 임산부가 있다니.
그 곁을 축복하듯 날아다니는 새하얀 천사는 꺄르르 웃음짓는다.
마치 ‘진짜 천사’처럼...
✺ 이들은 천사와 '공존'하고 있다.
마을의 청년 무리가 도끼와, 낡았지만 실용적인 연장을 들고
마을 어귀로 나가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어딜 가는 거지? 사냥이라도 가는 걸까… ...
온전한 고치가 보인다. 조사해볼까…
다가가려던 순간, 근처에서 느껴지는 묘한 인기척.
나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말았다.
마을 사람 여럿이 나타나고 그 중 도끼를 든 청년이 ‘고치’에 다가가 그것을 내려찍는다.
‘쩍, 쩌억,’ 곧 틈새가 벌려지고.. 질척한 액체가 그 사이를 흐르더니 손을 집어넣어 사람을 끄집어낸다.
… ...아니, 저건 사람이 아니다.
마을을 벗어나 얼마나 한참 안개 속을 헤맸을까,
지금까지 보아온 것은 비어있던 ‘고치’와 달리, 아직 손상되지 않은 깨끗한 고치가 보인다.
조심스레 다가가보니… 곧, 부화하려는건가?
살짝 갈라진 틈새 사이로 ‘그것’이 보인다.
사람처럼 불그스름한, 살구빛 살결을 가진… 날개달린 어린 「천사」가 잠들어있다.
연장을 챙긴 마을 사람들이 천에 감싸 안은 무언가를 들고 이동하고 있다.
...여긴.. 임산부가 있던 그 집인데… ...
‘으아앙, 으아앙,’ 갓 태어난 어린 아이의 울음 소리.
“쉬이-.. 착하지. 이건 세례란다.”
갓 태어난 아이의 입가는 라즈베리빛의 피범벅, 채 삼키지 못한 붉은 살점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잠깐만, 저건… ...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구역질이 올라온다…
그들은 감출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주먹을 쥐고 가슴 위에 올려 눈을 감는 모습은..
그들식의 기도인가? 맙소사.
인간 아이와 교감하듯 손 끝을 마주하던 작은 천사는 뒤에서 날개를 붙잡히고 공중에서 다리를 허우적댄다.
천사의 날개를 쥔 청년은 뒤에서 익숙하게 그 목을 긋고,
분수처럼 뿜어져나오는 피를 맞으며 아이가 빙글빙글 돌면서 방방 뛴다.
이건… 이건 뭔가 잘못 됐어.
이 건물은.. 도살장인가? 겉에 걸린 돼지 간판에는 X자로 거친 자국이 나있다.
“아, 구경 해보시겠어요?”
친절한 미소의 여자가 안으로 안내한다. 오래된 나무, 짙은 피비린내..
커다란 해체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것은 ‘짐승’이 아니다.
“정말 아름답고, 고마운 존재죠.”
그리 말 한 여성은 주먹을 쥐어 가슴 위에 올리면서 눈을 감고 나직히 기도한다.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천사의 언어’와 닮았다.
“같이 드시면 좋을텐데.”
방금 뭘 잡아서 테이블에 올리는 지 본 모든 헬리오스는,
차마 입에 댈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죠. 분명 고기일텐데, 입에 넣으면 달콤하거든요.
음.. 그러면 빵은 어떠세요? 방금 구웠거든요.”
‘성소’에 초대된 지 하루. 고작 하루다.
시간은 미치도록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과거 아리아의 대형 여관으로 쓰였던 곳을 숙소로 제공 받았고,
헬리오스는 여관의 1층 탁자에 모여 자신이 본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미친거지…”
이 곳은 하늘에 있는 ‘끝 없는 구멍’의 바로 아래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아마도 그 넓은 아리아의 수 많은 거처중, 일부러 이 곳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늘에서 울렁거리는 구멍에서는 기이한 소리가 나는 듯 하기도 하고,
고요한 자장가를 불려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잠들기 쉬운 밤이 아니겠지.
우선은 충분한 조사가 필요하다.
천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아낼 수 있는 기회,
특이 케이스를 곁에서 기록하고, 샘플 확보를… … 해야하는데,
그런데, 당장 이 모든 짓을 그만두게 하고 싶은 건 나 뿐만이 아닐 테다.
이 곳의 천사들이 유독 온순한 것은 왜일까.
역시 이 곳 사람들이 ‘먹는 것’과 관계성이 가장 커 보인다.
마치 서로를 동족으로 인식하는 것 같은 기이한 광경,
비틀어진 신뢰 관계의 형성.
“다른 분도 말씀하시던데.. 저희는 모두 여기가 좋아요.
밖엔 무서운 ‘천사’들도 있다고요? 그치만 여긴 그렇지 않잖아요? 그럼 된 거 아닌가요?
죄송하지만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내일 바로 떠나주세요.
내일. 바로요.”
아무 것도 입에 대질 못 하겠다.
그나마 넘어가는 건 깨끗한 식수뿐이다.
그런데 왜지, 물에서조차 비릿한 맛이 나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
마을 외진 곳,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어쩐지 섬찟한 느낌이 든다.
발소리를 죽여 조심히 다가가 보자…
남성이 천사를 끌어 안고 그 살결에 애틋하게 입 맞추고 있다..
그만, 그만 보자. 그 뒤는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
✺ 이들은 천사와 '공■'하고 있다.
집단 광기.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단체로 잘 못 먹고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걸까.
누가 처음으로 ‘저걸’ 먹을 생각을 했을까.
이 곳에 있는 소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남았나.
“헬리오스라고 했나요? 저기, ‘세례’를 받아보시는 건 어떠세요?
무서울 거 없어요. 이 또한 솔루스가 저희께 주신 선물일 테니까요.
달콤한 맛을 보면 확실하죠. 그렇지 않다면 맛이 좋을 이유가 있을까요?”
이 곳 사람들의 미소가 소름끼친다.
전부, 전부 그걸 먹은거야? 정말?
저 사람은.. 1년 전에 이 곳에 파견되었다는 황실의 정찰병.
“처음 도착했을 때는... 그 분들께 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 동료들도 모두… … 하지만, 그 분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었으니 모두 빛의 품으로 돌아갔겠지요.
저 또한 그 분들을 제게 받아들이고, 체내에서 하나됨을 느낍니다.
어쩌면 제 동료들의 조각도 저에게 함께 머무는지도요.”
천사는 사람을 먹는다.
이 곳의 사람은 사람을 먹은 천사를 먹는다.
그렇다면 그 죄는 어디로 향하나.
천사는 본래 온 몸이 창백하고 새하얗게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고치’안에 있던 것, 태어나기 직전의 천사는
마치 인간처럼 살구빛의 살결… ...
아, 식인을 한 천사구나. 그런 식으로 인간에 가까워진 거구나.
하늘에 있는 끝 없는 구멍이 갑자기 일렁거리더니
쿨럭이듯이 뿌연 안개를 뱉어낸다.
안개는 바로 아래에 있는 이 마을로 내려앉지 않고 그 주변으로 흩어져 내려간다.
이 곳의 안개는 저런 식으로 점점 더 견고해져간 거겠지.
누가.. 먼저 시작한겁니까? 조심스레 운을 뗀 헬리오스의 말에,
고개를 갸웃인 마을 사람이 누군가를 부른다.
부름에 달려온 것은 10살 남짓한 단발의 남자 아이… ... 주민과 이야기를 나누더니,
“아, 저예요. 처음에는 엄청 무서웠는데.
저.. 장롱 속에서 계속 갇혀있느라.. 아주아주 오래 갇혀있느라…. 배가 고팠거든요.
나와보니까요. 피가 많이 나서 바닥에 쓰러져 있었어요.
먹어봤는데요. 라즈베리 맛이 났어요. 그리고 친구가 많이 생겼어요.”
마을 주민들에게는 저마다의 생활이 있는 듯 하다.
성소를 나가 옷이나 생활에 필요한 재료를 조달해오고, 다 같이 이 곳에 모여 생활한다.
시장의 도시 ‘아리아’를 100명도 되지 않는 주민들이 사용하고 있으니..
2년동안 물량이 떨어질 일은 없었겠지.
지나오면서 보았던…. 싱싱한 과일이 나와있던 시장들은 뭐지?
다른 사람들은?
캐물어봐도 마을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어보인다..
“글쎄요? 축복 아닐까요?”
그런데 이상하다.
어제 갓 태어난 아이의 아비는 어디 있을까?
"그런 게 왜 필요한가요. 천사께서 제게 깃드신 거랍니다."
모친이 안고 있는 신생아는 창백한 피부에,
홍채 없이 흰자위만 있는 눈동자를 데록 데록 굴리고 있다. … 어제보다, 자라지 않았나?
나무 휠체어에 탄 만삭의 여성… … 인 줄 알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남성으로 보이는 이의 배가 비이상적으로 크게 불러있다.
일부러 드러내둔 팽창한 복부의 살결엔 울긋불긋한 핏줄이 서 있고, 약간이지만 안이 비쳐보인다.
무언가… 품고있다.
“제게도.. 잉태의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은... 크나큰 축복이죠..
그만큼의.. 고통이 따르지만 시련이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렇게 말하는 중년의 남자는 숨 쉬는 것 조차 버거워보인다.
어제 태어난 신생아는 붉은 고기를 먹고 있다.
만삭의 남성… 도 역시 같은 것을 먹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에서 온순한 천사를 만져본 적은 처음이다.
인간과 같은 부드러운 살결… …
‘그’가 옅은 미소를 짓고, 이마에 키스하려던 것을 한 발자국 물러나 피했다.
저건 인간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어야만 해.
“천사와 성애적인 관계를 갖기도 합니까?”
저렇게 대놓고 물어보다니… … 하지만 궁금하니까 조금 옅들어볼까?
“음… 그렇게 물어보셔도.. 글쎄요. 과분한 일이긴 하지요.”
우웩. 토나와.
“저기… 정말 드래곤이시면, 혹시 회복 마법..이라던가 그런 것도 하실 수 있나요?”
그렇게 말을 붙여온 이를 따라가자...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한 두 다리가 있던 남자 아이가 숨을 헐떡이며
이제는 없는 다리 근처를 꽉 잡고 있다.
붕대로 처치는 깔끔히 된 것 같지만… 도대체, 왜… ...?
어두운 실내는 마약성 향을 짙게 피워둔 상태이다.
다른 헬리오스 동료와 눈이 마주쳤다.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미 결정했다.
✺ 낙원은 폐기 처분한다.
없앤다. 이 곳은 즉시 ‘폐기 처분’한다.
헬리오스가 내린 결정은 그 것이다.
폐기 처분.
폐기 처분.
위험할 수 있으니 멀리 떨어지라고 해도 요지부동이다.
선한 미소를 띄고 있던 마을 사람은 분노하여 손에 도끼를 들고 우리를 공격해온다.
이 곳의 천사는 유독 공격력이 약한 것 같더니..
공격력이 약한 것이 아니라, 공격할 의지가 없어보인다.
그저 날개를 움직여 도망치고, 버둥거리다가, 이내 소환자의 검에 찔려 추욱 늘어져 ‘철퍽,’ 바닥에 떨어진다.
‘엉엉엉엉… 아아아아… 제발…’
바닥을 손톱으로 긁던 청년이 애원하며 매달린다.
“그만, 그만….. 제발……”
더 이상 여기에 머물고 싶은 헬리오스는 없을 것이다.
한 달간의 여행으로 스쳐 지나온 아름다운 ‘아르투스’의 새파란 풍경이 벌써 흐릿하다.
무겁고 비릿한 공기에 숨이 막히고, 시간 감각이 아득해진다.
즉시 모든 천사를 섬멸한다.
아니.. 이번에는 ‘학살’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조그마한 아이가 집에 숨어, 제 몸만한 천사를 끌어안고 숨 죽여 울고 있다.
한 손에는 아이 손에도 들어갈만큼의 작은 칼이.
다가가는 순간 휘두르면서 소리를 지른다.
이게 무슨 광경이지.
새하얀 돌바닥은 피에 젖어 웅덩이가 생기고,
아름다웠던 마을은 엉망으로 망가져있다.
아, 그렇지. 나는 이 것을 죽여야한다.
천사가 ‘학살’되는 광경에 울면서 쓰러진 노인이,
돌연 일어서더니 맨 발로 뛰어다니면서 미친듯이 웃는다.
노인의 힘으로는 들리지 않을 커다란 도끼를 들고 제 머리를 내리찍더니 철퍽, 쓰러진다.
지금까지 긴 생을 살며 이런 ‘인간’들을 본 적이 있나.
비슷한 종류의 것이라면 보았지만, 그 무엇과도 다르다.
검으로 천사를 벨 때, 그 앞에 달려든 것은… 사람이다.
인간의 피가 튀고, 그런 와중에도 그는 자신이 보호한 천사가 안전한지 확인하더니 기쁜 웃음을 짓는다.
왜… 이렇게까지?
사람을 찌른 감각은, 천사를 베었을 때와 다르지 않다.
✺ 헬리오스가 예일에 복귀했다.
아리아의 천사가 모두 섬멸되고, 끝 없는 구멍이 닫혔다.
안개는 녹듯이 사라졌고.. 살아남은 민간인은 알 수 없는 병증을 보여 예일로 후송되었다.
헬리오스는 우선 예일로 복귀한다.
아르투스의 천사는 모두 사라졌기에, 드래곤과 함께 장거리 비행을 할 필요는 없어졌다.
리무스에 있는 이동마법진을 타고 예일로 빠르게 복귀했다.
아, 이제는 황성이 돌아올 곳인가.
기사의 검은 가장 완벽한 살상무기임이 증명되었다.
천사 뿐만 아니라, 소환자의 재생 능력도 무력화시킨다.
유 라와 헨리 그레이필드에게 '사고'가 있었던 모양이다.
저건... 완전 회복이 불가능하겠는데... ...
헨리는 이대로 헬리오스 활동이 가능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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